산대를 무대로서 활용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산대를 무대 배경을 위한 설치물로서 활용한 경우이다. 전자는 산대 위에 잡상을 설치하고 놀리는 인형극이며 후자는 마당에서 이루어진 탈춤, 줄타기, 땅재주 등인데 18세기 후반 유득공이 지적한 산희와 야희에 각각 대응된다고 밝혔다.
달리 보면, 산
Ⅰ. 개요
강이천이가 관극시에 기록한 18세기 후반기의 산대놀이가 현전하는 양주와 송파의 산대놀이의 전신이라는 주장이 이미 학계의 통설이 된 작금에도 18세기의 이철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였던 이유로 벽사가면이 이철괴탈에서 연잎탈과 눈끔적이탈로 교체된 배경과 동기에 대해 어떠한 해명
놀이의 명칭에 있어서도 아동이 각 발달 단계에서 재미있게 감지하고 배울 수 있다.
④ 놀이 수준이 낮을수록 놀이를 가르치고 놀이과정을 도와주는 성인 협조자가 있었으나, 발달 수준이 높을수록 협조자는 사라진다.
≪ … 중 략 … ≫
Ⅱ.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의미
마을 굿으로 행
오늘의 현실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민속탈춤과 전통극에 대하여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 맥을 이어 보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것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기 시작한 대학에서의 탈춤 퇴살리기운동으로 70년대 후반부터 무용계에서 서서히 일어나게 된 민속춤에의 관심 등으로 이어져 왔다.
탈춤은 중국사신이 내왕하는 직북로에 위치한 봉산, 황주 등에서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또한 감영이 있던 해주에서 관아의 행사를 치루기 위해 전문적 놀이꾼이 산대희를 거행하던 영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본산대놀이가 황해도 각지에 퍼진 것으로 보인가. 1827년의 <팔도재인등장>에 의하면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