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줄타기, 땅재주 등인데 18세기 후반 유득공이 지적한 산희와 야희에 각각 대응된다고 밝혔다.
달리 보면, 산대가 세워진 공연 공간에서 마당 공간은 산대 위의 공간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당 공간을 산대의 가장 아래 층위로 설정한다면, 넓은 마당에서 시작하여 산대의 꼭대기에 이르는
그런데 양주별산대놀이의 명연기자였던 김성대(金成大; 19061970)가 ‘염불장단의 거드름춤은 몸 마디마디의 흥과 멋〔神〕을 풀어서 감듯이 다지는 춤이며, 몸 깊이 스며있는 기(氣)를 찾아내는 몸짓으로 인욕(忍辱)의 춤이며 학대받는 민중의 꿈틀거리는 몸부림’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거드럭거린
Ⅰ. 개요
강이천이가 관극시에 기록한 18세기 후반기의 산대놀이가 현전하는 양주와 송파의 산대놀이의 전신이라는 주장이 이미 학계의 통설이 된 작금에도 18세기의 이철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였던 이유로 벽사가면이 이철괴탈에서 연잎탈과 눈끔적이탈로 교체된 배경과 동기에 대해 어떠한 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