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뒤로는 형이상학적 관심이 희박해지고 대신 개별과학의 연구가 성행했다. 식물학의 테오프리스토스, 지리학의 디카이아르코스, 음악론의 이리스토크세노스, 자연학의 스트라톤은 그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BC 1세기에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
유가에서의 순자의 위치
중국 역사에는 춘추 시대라는 어지러운 시기가 존재
인간을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개체로 바라봤다.
순자의 사상, 발생배경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순자는 사리분별을 명확히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을 세울 필요성을 느꼈다.
한편 ‘듬’의 격 범주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금이듬’이 제외된 이유는 ‘금이듬’이 문장의 주성분에 포함되지 않아 격을 할당받는 논리적 구조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임이, 씀이, 남이’는 원래 격을 할당받을 수 있는 대상들이지만 이들이 각각 ‘임이빗, 씀이빗, 남이빗’을 갖지 못하고
2-1. 주시경의 삶과 국어연구의 수리학적 바탕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국어 연구와 운동을 통하여 일제침략에 항거한 국어학자 이자 국어운동가 이다. 본관은 상주이며 초명은 상호(相鎬), 일명 한힌샘․백천(白泉)·학신(學愼)으로도 불린다. 1887년 12세 되던 해, 서울에 있던 큰아버지 면진(冕
2. 유가에서의 순자의 위치
주나라는 크게 서주와 동주로 나뉘고, 동주는 다시 춘추와 전국의 시대로 나뉜다. 춘추 시대에 공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인과 덕을 바탕으로 한 사상의 체계를 세워 유교를 창설하고 그 가르침을 세상에 폈다. 이러한 공자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전국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