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가장 천재지변에 불안함을 감추지 않는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특히 더 잦아서 실제로 조광조가 위정활동을 했던 4년 간 연평균 100회 정도의 지진 홍수 가뭄 서리 냉해 등의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중종의 예민함에 더 자세히 기록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재해가 많았던 것이 사실
Ⅰ. 조광조의 생애
조광조는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4세때 부친이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자 임지에 따라가 그곳에서 몇 해를 지냈는데 17때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김굉필이 그곳으로 유배를 옴으로써 일찍이 김굉필로부터 학문하는 방법을 배웠다.
조광조는 그의 지성이 추구하는 이상을 현실적 장애를 무릅쓰고 구현하고자 애쓴 사람이다. 그가 취한 일관되고 고고한 행동은 그가 뿜어낸 열정으로 인해 조선왕조의 도덕적 위상을 향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소망했던 도덕 국가의 이상은 그가 도달했던 수준을 따르지 못
조광조 趙光祖
1482(성종 13) ~ 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한성출생.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오사화로 화를 입고 회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
조광조
①호는 정암이며 한양출신이다.
②정암은 학문을 할 때 “소학”과 “근사”를 존중.
③“성도치평”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고 했음.
④재야에서는 학문을 실천하는 것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전념. 벼슬을 할때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고 했음
⑤교육목적 : 성인의 도를 배워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