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임정의 외교활동은 종래와 같이 막연하게 한국 독립에 대한 지지와 국제사회의 동정여론을 불러일으키려던 선전외교활동에서 벗어나 교전단체 승인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데까지 발전하였다. 이것은 태평양전쟁 발발로 아시아와 태평양 상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반
: 1920년대 중반 이후의 독립운동과 8.15해방 이후 신국가건설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적 이념은 다양하였지만, 학계에서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독립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형태를 보였기에 ‘민족주의 vs 사회주의’가 아닌 우익진영과 좌익진영의 구도로 설
해방 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압박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미국과 소련의 점령통치를 받아야만 하였다. 게다가 사상과 이념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좌익과 우익으로 진영을 나누어 임시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서로 간에 반목과 대립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진영과 공산주의진영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소련은 점령지에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은 공산주의진영의 팽창을 막기 위해 봉쇄정책을 벌이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원폭 투하와 소련의 대일 선전 포고는 일본으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게 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