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스스로도 이러한 고리의 노예로 남기보다는 자신의 인생과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과감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새로운 학생운동으로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Ⅱ. 1940년과 1950년대의 학생운동
해방이 되자 학생들은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발족된 ‘건준’의
년대에 다양하게 대두되었지만, 그들은 교육프로그램이 고전적 그리스, 회브류와 함께 기독교적 전통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3).
그러나 진보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주, 지구 및 인간의 특성이 교육프로그램의 특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변화를 강조하였다. 비록 당시에
고등학교에서는 라틴어, 그리스어 및 영어와 그리스, 로마 그리고 유럽의 역사 및 수학을 주로 가르쳤다.
1905년에는 고등학교 학생수 98%가 영어를 배웠고, 87%이상의 학생이 대수와 기하과목에 등록했으며 50%이상의 학생이 라틴어를 수강했고 50%이상의 학생은 근대영어 코스에 등록했다.
년대 이르러 거의 사라졌다. 20년경부터 고무신 사용하였으며 일부에선 서양식 단화를 신기도 하였다.
① 남학생 교복
남학생 교복은 우선 1910년대에는 보통 단발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15년경부터 바지, 저고리 위에 망토나 오버 코트 입는 학생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남학생 교복이 양
운동시기의 통일전선운동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1920년대는 민족유일당운동으로, 1930년대는 독립운동정당간의 통일전선, 1940년대 임시정부로의 통합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도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 등으로 꾸준히 민족 통일 전선을 모색했으며 그 후에도 7.4공동성명 등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