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지역에 곧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강하게 일기 시작한다. 1906년 12월 26일부터 일 주일간 평양시내 장로교 선교사들과 감리교 선교사들은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를 주강사로 모시고 매일 저녁 기도회를 가지며 1907년 1월에 열리는
1907년평양 대부흥 운동은 결정적으로 서양의 종교인 개신교가 동방의 나라 한국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때문에 이 사건은 서양과 동양이 어떻게 만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문화의 기초 이념이었던 유교가 개신교의 전파에 어떠
부흥’을 부르짖으며,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1907평양대부흥운동의 10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교회는 더욱 부흥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성령께서 고대하시는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인가? 실제로 우리는 1907년평양
부흥운동을 위한 영적각성의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도 일종의 사경회였던 기도회에서 발흥했고, 1907년평양대부흥운동 역시 그해 1월에 열린 평안남도도사경회 동안에 일어났다. 1890년부터 사경회가 널리 시행되면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적각성이 서북지역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에 부흥이 일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에서 부흥의 불길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교회에서는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년의 백만인 구령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