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가사는 조선조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우리 고유의 성정과 산문적인 시대 정신을 담아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갈래였다. 기행가사는 이러한 가사의 하위갈래이자 기행문학의 한 형태로, 여행에서 얻은 견문과 소감 등을 적은 가사이다. 즉, ‘여행’을 내용요소로, ‘가사’를 형식요소로 하
본론
- 사행문학이란
사행(使行) : ‘사신행차(使臣行次)’의 준말로 외교 목적으로 다른 나라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는 관원의 공식업무 수행
- 정치·외교적 사안
- 당대 지식인들이 동아시아 세계를 인식하는 주요 통로
- 유입된 외부 문물 및 지식에 반응, 현실감각 조율
사행문학
- 사행
使行)에 참여했다. 노가재 연행일기는 이런 김창업이 1712년(숙종 38) 11월 3일 경성(京城)을 출발하여 12월 27일 북경(北京)도착, 다음해 3월 30일 경성(京城)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일의 사건을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척화신(斥和臣)인 김상헌(金尙憲)의 종손(從孫)으로서, 청(淸)을 이적국가(夷狄國家)로 보는
使行)을 기록한 것이다. 그 견문(見聞), 경과(經過), 감상(感想) 등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글로 상세히 적은 기행문이다.
북경에 있는 동안 입궐한 것 외에는 단 하루도 관을 나가지 않았으면서도 견문들을 소상하게 적어 놓은 점이 흥미롭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얻은 견문을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연행가(燕行歌)
1. 작품분석 및 창작동기
출발, 노정, 목적지, 귀로의 4단계 구분에 따른 『연행가』의 세부적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단계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
출발
使行差程(사행차정)의 동기와 구성원
창덕궁 인정전의 출발과 송별
노정
압록강 渡江(도강)
저음하는 寒屯(한둔: 찬 곳에서 밤
기본 과제로 삼았다.
6) 사행(使行)가사
공식적인 외국여행은 사신이 되거나 그 일행에 끼어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얻은 견문은 한문본 기행문으로 자세히 기록되어 자료가 풍부하다.
사사로운 소감을 흥미롭게 나타낼 수 있고 독자층이 넓어 긴요한 구실을 했다.
7) 풍물가사
키운다 -
페르시아의 사가인 “주바이니”의 몽골 군대에 관한 언급 中
3. 정보전의 활용
*역참제
중앙과 지방 사이의 명령 전달,
관리의 사행(使行)및 운수(運輸)
를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상인들을 통한
정확한 정보수집
상인과 기술자는 절대 해치지 않았다.
使行)의 왕래와 교역이 있었으나 자국인의 해외활동은 엄격하게 규제하였고, 더구나 동아시아 문화권 외의 외국인 접근은 엄격히 봉쇄, 차단하여 왔다.
이 쇄국 정책은 본래 동북아시아 서로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역외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북아 상호간의 왕래
使行)의 임무를 마침.
‧ 제 4 권 (돌아오는 노정과 창작 동기 1818구) :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0일 부산 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復命)함.
3) 의의
1763, 4년 당시의 일본 사정을 요모조모 국문으로 기록하여 국내에 알렸다는 점, 조선 후기 가사에 일본 체험을 부여하면서
使行)이다. 조선 왕조 실록에 보면 병자호란이 끝나고 당시 인조 15년 청태종이 용골대를 시켜 정식국교를 개시한 이래 삼절(三節) 이외에도 연공사(年貢使) 등에도 여려 명목의 사행이 있어 이것을 통하여 중국과 접촉하여 왔다.
이렇듯 청나라에 대한 사행을 흔히 「燕行」이라고 속칭하고, 이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