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兢)은『高麗圖經』에서 고려의 풍수 사상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고려는 본디 글을 알아 도리에 밝으나 음양설에 구애되어 꺼리기 때문에 그들이 나라를 세움에는 반드시 그 형세를 관찰하여 장구한 게책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확신한 연후에 자리를 잡는다. 『高麗圖經』卷 3, 地域 形勢
2.지리적인
徐兢)이 지은 ≪고려도경 高麗圖經≫에는, “여염집들이 있는 거리에는 경관과 서사들이 두셋씩 마주 바라보이고, 이곳에 백성의 자제들이 무리로 모여 스승에게 책〔經〕을 배우며, 조금 장성하게 되면 뜻이 맞는 사람끼리 벗을 택하여 절간으로 가서 글을 익힌다. 그리고 아래로는 코흘리개 어린이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흥겨운 축제의 장을 연출하고, 이를 통해서 청춘 남녀 간의 교제도 자연스럽게 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12세기 송나라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고려인들이 목욕을 즐겨하는 것을 특이하게 여겨 기록했는데, 이것은 고구려에서 내려오는 풍습인 셈이다.
徐兢)의 눈에 특이하게 비친 것 같다. 또 고려도경에서는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았고,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 좋은 술의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의 술에 관한 구체적 제법에 관한 문헌은 없으나 중국의 덧술 법을 배워서 한결 도수가 높아진 것이 아닌
徐兢)은 그를 고금에 밝고 글을 잘 짓는 박학다문한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김부식은 20여 년 동안 한림원 등의 문한직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켰고, 한편으로는 예종과 인종에게 사를 강론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유교 윤리의 실천을 주장하였고, 유교 이념의 실현에 노력한 학자였다.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