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정조(正祖)
화령전 內 정조 어진
1.생애
1752(영조 28)∼1800(정조24) 조선 제22대왕으로 재위기간은 1776∼1800년이며 이름은 산(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다.
1752년(영조 28)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 장헌세자(莊獻世子) : 영조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그에게 사도(思悼)의 시호
正祖)를 비롯한 보수파가 이를 바로잡으려 한 것을 말한다. 한문의 문장 체제를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회복하자는 주장. 조선 正祖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朴趾源의 《熱河日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참신한 문장에 대하여 그것이 소품 소설이나 의고문체(擬古文體)에서 나온 잡문체라 규정하여 정
正祖御眞翼善冠本) 도사(圖寫)의 동참화사(同參畵師)로 활동하였고 찰방 조선시대에 각 도(道)의 역참을 관장하던 종 6품의 외관직(外官職).
(察訪)을 제수받았다. 찰방으로 있을 때 김응환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 개성(開城). 자 영수(永受). 호 복헌(復軒) ·담졸당(擔拙堂). 도화서화원(圖畵署畵員)으로
正祖)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무렵 이벽(李蘗)을 통해 천주교에 관한 책을 얻었으며, 서양에 관한 사정을 들었다. 이후 관리로서의 길을 비교적 평탄히 걷던 그는 1795년 천주교를 포교하던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체포되자 이 사건에 연좌되어 충청도 금경찰방(金井擦訪)으로 좌천되었다.그후 다
正祖, 1752년 ~ 1800년)는 조선의 제 22대 임금이다. 휘는 산(),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묘호는 정조(正祖), 시호와 존호는 경천명도홍덕현모문성무렬성인장효대왕(敬天明道洪德顯謨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이며 대한제국 때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로 추존되었다.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와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자 한국사 최후의 명군이자 성군, 그리고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다.
정조(正祖)는 영조(英祖) 28년에 사도세자(思悼莊獻世子, 1735~1762)와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출생 전에 형인 의소세손이 요절하여 실질적 장남이었다.
1752년(영조 28
正祖 : 1752년~1800년)의 할머니.
영조 6년
(1730)
어려서부터 궁녀 생활을 하다 귀인이 되었으며, 1730년 영빈으로 봉해졌다.
영조 38년
(1762)
임오화변의 밀고로 사도세자 사사의 명분을 제공했다.
영조 40년
(1764)
아들인 사도세자가 사망한 2년 뒤인 1764년 7월 26일에 경희궁(慶熙宮) 양덕당(養德堂)에서 세상
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구체성의 실현
<수필 ‘한중록’>
사도세자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영조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결국 아들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자결을 명하였으나 듣지 않자 뒤주 안에 가두어 8일 만에 죽게 하였다....(중략)...
혜경궁 홍씨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의 어머니이며, 본
正祖) 연간에는 하한담(河漢潭)·최선달(崔先達)·우춘대(禹春大) 등 명창이 나와 판소리의 기틀을 잡았고, 순조(純祖) 때와 그 이후에는 권삼득(權三得)을 비롯한 고수관(高壽寬)·송흥록(宋興祿)·염계달(廉季達)·모흥갑(牟興甲)·신만엽(申萬葉)·박유전(朴裕全)·김제철(金濟哲) 등 이른바 판소리 8명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