甄萱)의 아들 신검(神劍)을 정벌하기 위해서 남정(南征)하였을 때 꿈에 중과 속인 두 신[僧俗二神]이 병졸을 이끌고 와서 구해주었다. 꿈이 깨어서 싸웠는데 이기게 되어 대관령산신에게 제사하고 치제(致祭)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이로 보건대 대관령산신은 10세기에 이미 있었으며 당시에 왕이 제사
후삼국의 통일과 고려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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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서론
통일신라말기의 모습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정
태조의 여러 시책
태조의 정치이념과 사상
고려 통일의 의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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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정은 바로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쟁패 과정이었다. 新羅(신라)는 이미 무력해진 데다가 甄萱(견훤)과 弓裔(궁예)의
Ⅰ. 고려의 역사
9세기 말엽 신라의 사회모순이 격화되고 중앙집권력이 약화되어 전국 각지에서 호족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호족들은 10세기 초에 이르러 견훤(甄萱)의 후백제와 궁예(弓裔)의 태봉(泰封)으로 통합되어 신라와 함께 후삼국으로 정립했다. 주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개성
甄萱)이 군내(郡內) 병산(甁山)에서 싸울 때 고을 성주인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 권행(權幸)이 고을민을 이끌고 태조를 도와 그 공이 컸으므로 부(府)로 승격하고 안동으로 고쳤다(태조 13년:930년). 그 후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쳤다가 성종 14년(995년)에 길주(吉州)로 하였다가 현종 3년(1012년) 안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