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참의원 카지마 – ‘아시아태평양공동체론’
1966년 제 1회 ‘동남아시아개발각료회의’ 개최
1967년 외상 미키 – ‘아시아태평양외교’
1967년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출범
1968년 코지마 – ‘태평양경제권’, ‘태평양자유무역지역’ 구상
1968년 제 1회 ‘태평양무역개발회의’
아시아 태평양
70년대 초에 일어난 국제정치의 변동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 및 일본과의 관계에도 몇 가지 변화를 안겨 주었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관계는 이 시기에 재조정이 필요해졌다. 그것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혁명적인 현상 타파 세력의 위치에서 멀어졌다는 점과, 미국의 철수로 베트남
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원래 ASEAN+3 참가국들을 창설 회원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ASEAN+3 국가들 이외 다른 역외 국가들도 EAS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는 여전히 회원국 결속력의 약화를 이유로 참가국의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이나,
회의는 1997년 아세안 창설 3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의 정상들이 초청되면서 시작되었다. 정상회의는 지역 협력 심화를 위한 개념 및 방향 설정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으며 지역 협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역내 국가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회의
승인하고 테러금지에 대한 보다 강력한 합의를 도출했음.
-또한 남아시아에너지협력(South Asian Energy Cooperation)을 위한 연구 실시, 남아시아개발은행(South Asian Development Bank) 설립의 타당성 조사 등을 지시함.
④이에 딸 14억 인구를 지닌 남아시아 지역에 자유무역지대가 창설된 경우 규모 및 지역적
각료회의에서 이 문제를 밀레니엄 라운드로 다루게 될 것이다. 그 골격은 이미 다자간투자협정안에 나와 있지만 이 다자간투자협정이 새로운 세기의 다자간투자규범으로 확정되어 가게 될 경우 이 다자간투자협정안이 안고 있는 내용이 두가지 점에서 검토될 수 있다.
첫째 다자간투자협정 당사자
동남아시아의 지역협력기구
설립연도 : 1967년
목적 :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기반 확립
주요활동 : 정상회담, 각료회의
가입국가 : 10개국(2002년 8월 현재)
본부소재지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세안(ASEAN)으로 약칭된다. 1961년 창설된 동남아시아연합(ASA)의 발전적 해체에따라 1967년 8월 8일
회의-금환본위제 채택(금본위제로 복귀하되 금 중심국만이 금본위제 유지, 여타 국가들은 금 및 금태환이 보장된 교환성통화를 화폐발행준비로 보유)
• 실제로는 미국만이 금화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로 복귀, 영국과 프랑스는 금화의 자유주조 및 금태환이 제한된 금지금본위제(gold bullion st
아시아 경제 협의회(EAEC) 구상을 아ㆍ태각료회의(APEC) 틀 안의 협의체로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아ㆍ태지역 경제질서 형성과정에서 독자적 발언권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ASEAN이 세계경제시장의 중심지로 부각하는 가운데 각 지역은 ASEAN과의 관계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동남
개발회의(PAFTAD)가 창립되고, 1980년에는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가 설립되면서 관심이 고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0年代末의 세계경제환경, 예를 들면, 1986년 EC의 유럽단일의정서의 조인을 통한 지역경제 블록화, 아태지역 내의 구조적 무역 불균형의 심화, 국제산업구조 및 금융조정과정에서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