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진, 김구용, 박재삼, 한하운, 이경순의 작가론을 한 권에서 함께 다루고 있다. 그 중 정한모론은 “3. 영원한 ‘빛바라기’와 ‘원점’회귀의 시학”으로 다뤄진다.
으로 등장하게 된다.
1946년 그의 나이 23세 때 같은 마을의 박종월과 결혼한다. 결혼 후인 1947년 9월, 그는 스물다섯 늦깎이로 서울대
박태진, 박기준, 김기림, 조병화, 김관균 등 많은 문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나는 임화를 참 좋아했다. 그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의 사상까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사람자체가 좋았기에 그가 낸 청량리 사무실에서 외국 잡지 번역을 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이종구 선배의 친구
박태진 등과 재회. 선린상업학교 영어 교사.
1954년 주간 <<태평양>>에 근무.
1955년 <<평화신문사>>문화부 차장.
1957년 김종문, 이인석, 김춘수, 김경린, 김규동 등과 묶은 앤솔로지 [평화에의 증언]에 폭 포등 5편의 시 발표.
1958년 11월, 제 1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 간행.
1960년
박태진, 「고달픈 직장인의 애환, 증후군으로 나타난다?」, 한국건강관리협회지 제39권 9호 통권442호, 2015.09, pp.26-27
김기택 시인의 「슬픈 얼굴은 이러한 현대인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윽고 슬픔은 그의 얼굴을 다 차지했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로 차오르던 슬픔이
어느새 얼
접근이
가능하지는 않다(박선희,2002).
따라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억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으며 기억에 의존한다.
기억에 의존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때조차도 과거경험은 후속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박태진,1993). 또한 기억은 우리들의 생활과 행동 발달에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