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장인가, 개혁인가?)
19세기 후반 한국의 근대개혁운동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894년1월 초 농민전쟁의 시작에 이어 6월 말 청일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출범한 새로운 개혁정부는 조선국가의 근대적 개혁을 수행했다. 이를 당시에는 대경장(大更張)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빌려와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를 전통관의 내용 뒤에 넣음으로서 단순한 요점정리가 아닌 우리의 생각을 같이 표현하고자 하였다. 끝으로, 미비가 있는 부분은 각 하단에 각주와 발표 시 자료나 설명으로 보충하도록 할 것이다.
Ⅱ. 유길준 [兪吉濬, 1856~1914]에 대하여
1. 유길준
Ⅰ. 개요
세계화(globalization)는 넓은 의미에서 국가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자유로운 경제교류와 문화 및 정보 교류를 통해 과거에 비하여 더욱 상호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복지개혁과 연관하여 세계화의 의미는 좀더 경제적 이슈에 초점이 모아진다. 즉 자본, 상품,
1. 서론
갑오개혁이란, 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개화파 내각에 의해 추진된 근대적 제도개혁으로서 갑오경장이라고도 불리며 ‘위로부터의 개혁’의 대표적 주자이다.
19세기 후반 한국의 근대개혁운동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894년 1월 초 농민전쟁의 시작에 이어 6월말 청일전쟁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H.B Hulbert의『사민필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개화를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으로 이해시키도록 노력했다. 또한 이러한 개화의 움직임을 소화하려는 취지의 글들을 통해 서양의 부국강병의 중추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보적 과학 기술관과 세계상이 조선에서의 개
*『서유견문』참고 정보
가) 개화에 대한 열망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유길준은 전권대신들을 수행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접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와 자신이 견문했던 체험들을 기록으로 전하고자 했다.
『서유견문』은 기행문에 속하나 집필
유길준(兪吉濬)이 쓴 유럽·미국 기행문. 1895년(고종 32) 도쿄[東京] 교순사(交詢社)에서 간행하였다. 1881년(고종 18)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게 되면서 구상하였고, 83년 9월 민영익(閔泳翊)을 전권대신으로 한 보빙사(報聘使;친선사절단의 하나)의 수행원으로 선발되어 이듬해 11월까지 미국에 체
西遊見聞(1889년 탈고, 1895년 간행)은 개혁사상가이자 정치가이며, 최초의 일본·미국 유학생이었던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이 저술한 국한문혼용체의 서양제도와 문물에 대한 소개서 혹은 견문기이다. 그리고 개화파의 사상과 제도개혁구상을 집약한 개화사상서로 높이 평가되는 중요한 일급 사료이
유길준의 자신의 개화 관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유길준은 “무릇 開化라 하는 것은 인간의 千事萬物(천사만물)이
至善極美(지선극미)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개화하는 영역은 한정하기 불능한 것이다”라고 개화의 개념을 정의하고 “연대가 내려올수록 사람의 개화
유길준(兪吉濬), 윤치호(尹致昊) 등의 스승이자 한국 개화파에 영향을 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인 유학생 유길준, 박영효(朴泳孝), 윤치호 등과 만나 토론, 담론을 했는데, 이후 이들이 귀국한 뒤에도 꾸준히 연락하며 조언을 해 주었다. 독립신문 등 신문과 언론에 종사하던 윤치호와는 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