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내마저 축소된 것은 호족시대 이래 승주의 세력이 1018년을 전후하여 크게 위축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에 지금까지 승주의 임내이던 낙안군과 곡성군 등이 승주보다 거리가 훨씬 먼 나주목의 임내로 이속된 것은, 백제와 고려의 쟁패기부터 이미 왕건의 세력 근거지로서 고려왕실과 특수한
임내 가운데 우선 주현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속현이나, 주읍과 멀리 떨어져 있어 官府와의 왕래가 불편하고 향리의 횡포가 심한 속현부터 수령을 계속 증파함으로써 민폐를 해소하고자 함
◇여말까지 감무가 계속 신설됨으로써 주현이 될 만한 객관적 조건을 갖춘 속현에는 수령이 거의
“강원도의 고성 임내 안창현의 초가집에 사는 이각과
역자승 홍민이 사재감의 노승 신철과 서로 말하기를 ‘이 임금 때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심히 어려우니, 만약 내가 임금이 된다면, 연사가 반드시 풍년이
들것이라’고 말하여 큰 소리가 한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하니, 홍민과 신철을
계하기를, “강원도의 고성 임내 안창현의 초가집에 사는 이각과 역자승 홍민이 사재감의 노승 신철과 서로 말하기를, ‘임금이 때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심히 어려우니, 만약 내가 임금이 된다면, 연사가 반드시 풍년이 들것이라.’고 말하여 큰 소리한 죄를 지었습니다.” ( 세종 019 05/03/05 병술)
세력 거점인 임내를 모두 없애고 수령이 직접 통치하는 300여 개의 군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전략적으로 문치의 방법을 써서 서서히 물들여나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그보다 중요한 것을 얻었으니, 그건 바로 ‘훈민정음’의 탄생이었다.
임내였던 유성현과 덕진현은 폐현되어 공주목에 속하게 되었다.
일본은 대륙을 침략하기 위하여 부산에서 신의주를 잇는 간선인 경부철도를 부설하기 위하여 1898년 9월에 경부철도의 부설권을 얻었다. 대전은 경부철도의 중요한 통과 지점이었고 공사를 진행하는 중요한 기지이기도 하였다.1900년대
토양은 식물을 물리적으로 지지하고 수분과 양분의 공급원이며 독성물질을 완화하는 역할과 식생 분포를 결정하는 곳이다.
토양이란 암석의 풍화물과 동식물의 분해물이 혼합된 곳으로서 모재, 지형, 생물, 기후, 시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생성된다.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은 입자의 크기, 결정,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