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명청시대 신사의 형성과 그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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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역사] 명청시대 신사의 형성과 그 기능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신사계층의 형성과 구조
① 중간층의 등장
② 신사계층의 구조와 성격
ⅰ. 학위층
ⅱ. 관직경력자와 미입사 학위층간의 동류의식
ⅲ.‘비정도(非正途)’
③ 신사계층의 형성
④ 신사층의 구조
⑤ 신사의 특권과 그 의의

2. 신사와 과거제도
① 과거제와 학교제의 결합
ⅰ. 관학과 과거제의 결합
ⅱ. 社學과 書院
② 명․청시대의 과거제도와 신사
ⅰ. 시험준비 - 신사의 주요활동
ⅱ. 시험 내용과 관리 선발
ⅲ. 학위
(1) 생원(生員)
(2) 감생(監生)
(3) 거인(擧人)
ⅲ. 과거제도의 성격 - ‘평등정신’
ⅳ. 과거제도의 폐단과 붕괴
(1) 부정행위
(2) 부패행위 근절 활동.
(3) 과거제도의 붕괴

3. 신사의 기능
① 질서 유지 면에서의 신사의 기능
② 경제적 영역에서의 신사의 기능
③ 문화적 영역에서의 신사의 기능

4. 명·청대에 걸친 신사층의 변화과정
- 지도층 신사의 분열과 해체

5. 결론



본문내용

② 명․청시대의 과거제도와 신사
ⅰ. 시험준비 - 신사의 주요활동
과거에 합격해 관료로 진출하는 것은 신사에 있어 최종목표였다. 생원이 되는 동시도 과거로 볼 수 있겠으나. 엄밀히 말해, 상층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향시부터가 실질적인 과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신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집단은 지방관학(부학(府學) ․ 현학(縣學))의 학생인 생원 층이었는데, 관료로 진입하는데 가장 첫 단계이지만, 이들도 상당한 준비과정을 거쳐 선발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수험생활의 최종 목적지는 여기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즉, 그들로서는 비정도로 신사가 된 감생들 다수와 함께, 상층신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러한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바로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 거인(擧人)이 되어 회시(會試)와 전시(殿試)에 합격하여 관료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향시의 응시자 수는 어림잡아 89,600명으로 추산된다. 장병례, 중국의 신사 『 청국행정법분론』에 인용된 淸國通考(청국통고)로부터 인용했다. 청국행정법분론에서는 거인의 정원이 1,496명이라고 한다. 고생의 수에 관한 추산치는 보수적인 편이다. 아마도 향시에 참가할 수 있는 고생의 수는 성의 크기에 따른 정해진 합격정원의 수와 관련이 있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청나라 시대 동안 이와 같은 관계는 동일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746년에 마침내 직예 ․ 강남 ․ 복건 ․ 절강 ․ 호광 ․ 강서 등과 같은 큰 성에서는 수여되는 거인학위 하나에 대해 응시자 즉 고생(考生)이 80이 되며, 산동 ․ 산서 ․ 하남 ․ 섬서 ․ 사천 ․ 광동 등과 같은 중성(中省)에서는 60:1, 그리고 광서, 운남과 같은 작은 성에서는 50:1로 할 것을 규정하였다. 향시에서는 거인 9명 당 1명의 부방(副榜)을 뽑도록 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부방 1명 당 대성에서는 40명의 고생을 추가하고, 중성에서는 30명, 소성에서는 20명을 추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 관행에 있어서는 학정들이 이 규정에 얽매이지 않았고, 총독 ․ 순무 그리고 다른 고위 학관들이 학정이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들려 보내곤 했다. 따라서 실제 비율은 100:1을 넘어섰다고 한다.
각 성별로 7,000 ~ 8,000 명 내외 였다고 하는데, 이는 성마다 다르다고 한다. 당시 거인의 정윈이 1,500명 정도 였다고 하니, 경쟁률은 약 60:1이 었고, 중기 이후로 넘어 갈수록 학위 계층이 고정화됨에 따라 그 비율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실제로 상급시험을 준비하는 하층신사의 수는 훨씬 더 많았다.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격을 박탈 당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학문적 소양이 부족하다거나, 세금을 내지 않았다거나(당시 세금을 완납하지 않을 시 과거시험에 응시 불가), 지위를 박탈하게 되어 있는 범죄에 연루되어 어서 시험참가가 잠정적으로 보류되어 있거나(답안지에 부정확한 용어를 사용 예를 들자면 황제의 이름을 언급한다든가 하는 것), 부모가 상중이거나, 고관이나 시험장 관리관의 친인척 관계에 있다는 것에 해당할 시 등과 같은 것 들이 있었다. 향시에 합격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는 다음의 몇 가지 예에 드러나 있다. 8회 응시하여 모두 실패한 사람(3년에 1회 열렸으므로, 24년 동안 응시해서 합격 못함), 일곱 번을 실패한 사람, 심지어는 14회 응시해서도 모두 실패한 사람도 있었다 하니 이는 우리나라 대학입시에 비할 바가 못 되는 듯하다. 이렇게 힘들게 합격하더라도, 거인에서 진사가 되는 길도 마찬가지로 험난했다. 어떤 응시자는 4번을 실패한 뒤에 간신히 합격한 사람도 있었고, 계속 실패하다가 결국에는 연납으로 관직에 진출한 자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아예 포기한 사람들도 수두룩하였다. 장병례, 중국의 신사 p.233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각종 시험합격자 들의 평균 연령은 생원은 24세, 거인은 약 30세, 진사는 약 35세였다.(실제로는 50, 60에 진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대부분 실제 나이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수의 신사들이 신분 상승을 위해 위에서 언급했듯이 끊임없이 상급시험 준비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다면, 상급신사로서의 신분상승을 포기한 사람들은 어떠하였을까. 과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학정이 주관하는 3년마다 1회씩 치르는 세시였다. 그들의 등급 상승과 하강이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이루어졌다. 시험결과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어 졌다. 1,2등급자들은 승급 대상 (증생 → 늠생, 부생 → 증생) 4,5등급에 있는 자는 강등당하고, 6등급을 받을 시 자격이 박탈되었다.(생원 자격 상실)
또한 세시는 3회 이상 결시 시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기적인 시험은 군복무중이거나 관호를 수여받거나, 혹은 6품의 대우로 효렴방정에 천거되어서야 비로소 면제가 가능하였다. 심지어는 병이 든 자. 30년 이상 관학에 있던 자. 70세 이상이 되었거나 하더라도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시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상으로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그들이 신분상승을 목적으로 하던, 현재 지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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