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철학 헬레니즘 신플라톤 학파 알렉산드리아 학파 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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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헬레니즘로마시대의 철학
그리스 철학에 있어서 최고 전성기는 아테네기의 철학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철학의 새로운 전환이 모색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전환은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를 거쳐서 방대한 체계가 수립되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은 더 이상 독창적인 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종래의 철학을 약간씩 변경시킨, 말하자면 아류의 철학에 불과하다.
이처럼 이 시대의 철학이 그 전 시대에 비해 독창성을 가지지 못하게 된 까닭은 이 시대의 철학이 주로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론적인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소크라테스 이후의 그리스 철학은 실천적인 문제에 궁극적인 관심을 두었지만, 이 경우에는 이런 실천적인 문제를 기초지우기 위한 이론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시도하였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은 주로 개인윤리 즉 어떻게 하면 안심입명(安心立命)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더 이상 체계적인 이론이 요구되지 않았고, 다만 안심입명만 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체계적인 이론 따위는 불필요한 것이고, 다만 자기의 실천에 편리한 이론을 전통 철학 중에서 그때그때 빌려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처럼 이 시대의 철학사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존해 있을 때,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 합병되었고, 알렉산더가 죽고 난 다음에 그리스는 종종 전란의 도가니로 화하였다. 그 이후 그리스는 강력한 군사국가인 로마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불행한 정세 하에서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폴리스의 붕괴로 인해서 나타나는 허무감, 고향상실감 등 때문에 철학자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철학에 몰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급적 국가적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직 개인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리스적 전통은 로마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해 갔다. 그래서 로마시대의 철학조차도 그리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의 사상은 한 사람, 한 시대의 소산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오랜 시일에 걸쳐서 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상의 세밀한 점에서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으나, 그 근간에 있어서 조류를 같이하는 사상을 통틀어서 스토아학파의 철학이라고 한다. 이 학파의 창시자는 그리스 사람이 아니고 패니키아 사람으로 짐작되는 키티움의 제논(Zenon of Citium)으로서 그는 기원전 316년경 아테네에 와서 스토아포이키레(채색한 전당)에 학교를 창설하고, 오랫동안 교수하였다. 스토아 학파란 명칭은 이에 기원한 것이다. 클레안테스(Kleanthes)가 그의 뒤를 이었고, 또 크루싶포스(Khrusippos)에 이르러 아테네 학계에서 군림하게 되었고, 파나이티오스(Panaitios)에 의하여 로마에 전파되었다. 로마에서는 대체로 통속적이고 절충적인 도덕설로 되었는데, 이 시대에 유명했던 스토아 학자로서는 벌률가요 또 정치가이며 폭군 네로의 스승이기도 하였던 세네카(Seneca), 에피크테토스(Epiktetos), 또 명군 안토니누스(Antoninus, Marcus Aurelius) 황제 등이다.
스토아학파의 사상은 학설로서도 큰 세력을 폈지만 그 시대의식에도 적합하여 마음의 수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특히 로마에 전파된 후에는 무(武)를 숭상하는 로마인들의 기풍에 맞아 수도에서 성행되었다. 스토아학파는 철학논리물리윤리를 구분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윤리에 있었고, 논리와 물리는 윤리의 기초과목에 해당하였다.
스토아학파는 사물에 공통되는 보편적 성질을 실재라고 보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그런 보편은 우리 주관이 생각해서 언어로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은 감관을 통해 지각함으로써 성립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감각에서 시작하여 이 감각을 통해 성립되는 지각이 후에 남아서 기억이 되고, 기억이 쌓여서 경험이 되고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여 보편적 관념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외물의 인상을 통해서 성립되므로 우리의 관념이 진리냐 아니냐 하는 점은 그 관념이 대상과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다. 그런데 이 일치불일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참된 관념은 그 관념이 직접 진리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진리가 스스로 진리임을 나타내고, 다른 것이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님은, 마치 빛이 다른 것에 의해서 비추어지지 않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스토아학파의 형이상학은 유물론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 인간의 영혼이나 신은 물론이요 사물의 성질 그리고 덕이나 정욕까지도 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물체는 물질과 힘으로 양분된다. 양분되면서도 하나의 것이다. 물질 그 자체에는 아무런 성질이 없으며, 거기에 힘이 가해져 운동하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 성질이 나타나게 된다. 스토아학파에서는 이 힘의 근원을 헤라클레이토스를 따라 로고스라고 하였고, 또 만물의 근본원소도 불(火)이라고 했다. 이 불이, 곧 신이요 로고스이다. 이러한 스토아 학파의 형이상학은 범신론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즉 로고스요 신인 불의 일원론을 주장했으나 이 불은 일면 물질이면서 다른 면에서는 힘이요, 또한 정신이기 때문에, 불을 근본 원소로 하는 이 우주는 이성적인 것이어서, 거기에는 질서조화목적과 미가 있다. 인간의 영혼은 우주의 신화의 일부분을 받은 것으로 인간에서 가장 존귀한 이성은 우주의 이성인 로고스가 깃들어 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이성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성은 또한 이 우주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다운 생활, 인간의 본성에 맞는 생활은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스토아학파의 모토(motto)는 ‘자연에 순응하여 생활하라’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천리와 인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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