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

 1  [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1
 2  [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2
 3  [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3
 4  [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독후감]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나는 가족들은 불교지만 딱히 종교에 연연하지 않아서 무교나 다름없고 평소 종교에 관심이 없어서 대표적인 종교들도 이름만 아는 수준이었다. 그런 나에게 생전 처음 듣는 창가학회라는 생소한 종교는 책을 열기도 전에 나를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제목에 언급된 ‘재일한국인’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쉽지 않은 내용일 텐데 거기에 ‘창가학회’라는 종교까지 더해져서 이번 책 역시 녹록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읽다보니 이제까지 읽었던 책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혔고 심층면접 식의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더 부담 없이 잘 읽을 수 있었다. 두 가지 어려운 주제가 섞인 책일 것이라는 걱정과는 다르게 오히려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연결 지어 읽다보니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도 모두 이해가 더 잘되었다. 왜 굳이 교수님께서 두 가지를 연결해서 제목에 넣으시고 글을 쓰셨는지 납득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처음 강하게 든 생각은 왜 재일한국인이 창가학회에 의탁하게 되었는가? 였다. 그 결과, 그 이유가 되는 재일한국인들의 생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우리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정체성, 즉 뿌리에 관한 생각으로 퍼져나갔다. 타국에서 자신과 다른 언어, 문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되고 많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전에 ‘뿌리’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본적이 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선명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흑인 노예가 자신이 살던 부족을 그리워하면서 치열하게 그곳으로 가기위해 살아나가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 노예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열망으로 결국 자신의 고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이렇듯 자신의 뿌리에 대한 열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더욱 고립된 느낌을 받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과연 자신이 누구이며 어느 나라의 사람인가에 대한 혼란을 가지게 된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제주도 토박이라는 것도 잘 안다. 외국인을 만나서 나를 소개하게 된다면 당당히 ‘저는 한국인입니다. 또한 제주도에 20년 동안 살고 있는 제주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할 것이다. 내가 내 뿌리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당당할 수 있는 힘이고 내 자존감을 세울 수 있는 원천이 된다. 그러나 재일한국인은, 특히 재일한국인 2세 이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많이 느낄 것이다. 또한 일본인이 아니라는 주위의 시선과 차별 때문에 자신의 몸에 섞인 한국인의 피를 부정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힘이 들 때 종교에 많이 의탁한다. 창가학회도 이러한 재일한국인들의 심리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을 것이다.
창가학회에 대한 여러 특징들을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창가학회가 여느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사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운영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창가학회 본부 직원이나 회관 관리 직원은 급료를 주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급료를 주지 않고 무보수 활동을 하며 자발적으로 봉사를 한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운영방식 덕분에 창가학회에서는 성직자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 부담이 타 종교에 비해 훨씬 적다고 한다. 우리는 개신교에서 헌금을 하거나 불교에서 시주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창가학회는 스스로를 ‘헌금함이 없는 종교’라고 할 정도로 헌금에 대한 부담이 적고 그 성질도 타 종교와는 다르다. 1년에 단 한 번만 내는 헌금이고 헌금에 대해 강요적이지도 않으며 스스로의 형편에 맞게 내면 되는 것이다. 그 액수가 적어도 누구 한 명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신도들 또한 굳이 많이 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않는다. 이렇듯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을 운영하는데 그 과정이 적어도 다른 종교에 비해 투명하다는 점과 의무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많은 양의 헌금이 들어오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운영 방식 면에서 탁월하게 잘 돌아간다는 점이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가족만 해도 불교를 믿는데 부처님 오신 날이나 수능과 같은 큰 행사 전에 절에 가서 등을 올리고 시주를 한다. 그 액수가 크건 작건 간에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그 외에도 자잘한 일들로 나가는 액수가 꽤 된다. 언제부터인가 시주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잘될 것 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이제까지 쭉 그래왔기 때문이라는 의무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자발적 헌금인 창가학회의 방식이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핵가족화가 되면서 공동체라는 말이 어색해진 오늘날에도 지역 중심의 신도들을 조직해서 공동체로 활동하면서 자기 성장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라 속의 나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나 역직을 담당한 사람을 결정할 때 선출제가 아니라 합의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공동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추천을 거쳐서 위원회가 결정하는 합의제는 우선적으로 그 안의 사람들이 추천을 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 어느 정도의 교양과 덕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일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 위원회가 결정하기 때문에 뽑힌 사람에 대해서 신도들도 불만이 없을 것이다. 뽑힌 사람 역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더 열심히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모두의 의견이 들어가는 합의제야 말로 나라 단위의 대규모 선거에서는 쓰일 수 없겠지만 여러 종교 단체들이 본받아야 하는 모범적인 선거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위원회를 결정할 때 완벽히 중립적일 수는 없고 만일 이를 창가학회처럼 신도들이 급료를 받지 않는 시스템이 아닌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급료의 액수가 커지는 타 종교에 적용했을 때 위원회들 사이에 뒷돈이 오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위원회에 대한 감시만 철저히 한다면 괜찮은 선거법이 될 것이다.
창가학회는 한국 SGI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있고 그 외 192개국에 전파되어있다. 처음 들어보는 종교였는데 한국에도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192개국에 자리 잡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본래 한국과 일본은 그다지 친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종교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창가학회의 이념과 목표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창가학회는 평화 문화 교육을 이념으로 다양한 문화운동, 교육운동, 평화운동을 전개하며 세계평화 실현을 추구하고 있다. 창가학회를 단순히 일본의 종교로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이 아니라 창가학회의 세계평화 실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뒷부분에 보면 ‘창가학회는 일본의 종교가 아닌, 자신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일 뿐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처음에 일본의 종교라는 생각에 색안경을 끼고 본 나를 뜨끔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재일한국인들이 타지인 일본에서 의탁한 종교인만큼 일본의 색 보다는 그저 사람의 색이 강한 종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일한국인 1세처럼 주변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국에 머물게 된 사람도 있을 테고 자의로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타국이라는 점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편함은 모두 같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일한국인들의 힘들었던 삶과 외로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고통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준 창가학회에 대해서도 새롭게 접하고 많은 배움을 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가까우면서도 먼 재일한국인에 대해서도 같은 한국인임에도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핍박과 눈물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당당히 살고 있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가족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로 공동체처럼 그들을 감싸준 창가학회에 대해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귀화에 대한 생각의 변화이다. 이제까지는 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솔직히 자신의 본래 뿌리를 져버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좀 부정적으로 봤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귀화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너무 속사정까지 모르면서 멋모르고 무조건적인 비난만 했다는 사실에 많이 반성했다.
창가학회의 이념은 행복과 세계평화이다. 이런 이념을 가지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하고 있고 또 노력하고 있는 종교이다. 특히 창가학회는 다른 종교처럼 ‘사후에 행복해질 것입니다.’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오로지 현세의 행복에 치중할 뿐이다. 가뜩이나 잦은 전쟁과 피난길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런 면에서 창가학회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오갈 데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준 창가학회인 만큼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라는 말에 백번 공감을 했다. 창가학회가 정치적으로도 큰 힘을 가지고 있고 여러 다른 종교 및 단체들의 눈엣가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면만 보고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념과 목표가 무엇인지 먼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 이것만으로도 창가학회가 꽤 괜찮은 종교라고 칭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그 당시의 재일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해준 일이 없다면 재일한국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창가학회에 고마움을 표하진 못할망정 견제하고 배척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창가학회의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이 책을 계기로 좀 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한 번쯤 알아보고 싶은 종교이다. 앞으로도 재일한국인들과 그 외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종교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