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숙명 전환의 선물을 읽고 - 사회조사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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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숙명 전환의 선물을 읽고
사회조사실습
제목에서부터 나오는 ‘창가학회’를 보고 평소 종교와는 거리가 먼 나는 단지 일본의 종교라는 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자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무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일본계 종교가 과연 재일한국인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책의 제목이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본을 왜구라고 생각해서 가까이 두지 않았었고,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반일감정은 매우 커졌다. 그것은 현재까지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재일한국인들이 일본 내에서도 적대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창가학회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등으로 인해 형성된 재일한국인 집단이 어째서 일본의 신종교인 창가학회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창가학회가 왜 비난을 받는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창가학회란 무엇인가? 창가학회는 니치렌이 인도와 중국에서 받아들인 불교 경전과 풀이를 재해석한 교리를 바탕으로 한다. ‘창가’란 ‘가치 창조’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창가교육은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주체적인 인간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처음은 이처럼 창가교육학회로 시작했으나 후에 ‘창가학회’로 바꾸고 재출발했다. 1960~1970년대에 조직적인 포교 활동을 전개해 신도 수를 700만 명으로 늘렸고, 엄청난 규모의 종교 단체로 성장했다.
재일한국인들은 왜 창가학회의 입신하였는가? 종교에서의 신앙심은 사람들이 심신이 불안정해 무언가 의지하고 싶을 때 더욱 그 신앙심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한국인들의 상황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 해볼 수 있었다.
재일한국인 2,3세는 대부분 부모로부터 창가학회 신앙을 물려받았는데, 그들의 부모인 재일한국인 1세들이 창가학회에 입회했던 시기를 보면 창가학회가 급성장하던 1950~60년대로, 당시 재일한국인들은 변변한 직업이 없었으며, 아프고 가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중에 혹은 먼 미래나 사후의 행복보다는 지금 이곳에서의 현세이익에 대해서 가르치는 창가학회는 분명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면, 미래보다 현재의 이익을 가르치는 창가학회에 더 혹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종교가 국가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점을 보아 국가 종교가 무너지고 나온 신종교라는 점 또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일한국인들은 창가학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일본을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가난, 병 말고도 그들을 괴롭혔던 것은 ‘조센징’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였을 때의 차별이 이어진 것인데, 이러한 차별은 결국 경제적 궁핍으로 이어졌고, 이는 재일한국인들을 사회의 끝으로 몰아버린 행위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차별은 그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그들은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무관심 또한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노력해 한국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고 지원해 줬다면 그들이 과연 창가학회라는 종교에 입신하여 의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들은 고통 속에서 조금이나마 의지할만한 곳이 필요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재일한국인들이 창가학회에 신자로 계속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일한국인 1세들의 영향이 없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에 천주교에 다녔었던 경험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을 보면 부모님의 영향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고 이것을 시작으로 아직까지도 종교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경우도 흔히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사라지지 않은 차별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관련된 글을 본적이 있다. 재일한국인인 아이가 여전히 일본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조센징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지메문화의 타겟이 재일한국인들이 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사라지지 않은 차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직을 담당하는 사람을 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점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면담한 인원 중 82%가 역직을 맡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봤을 때, 차별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재일한국인들이 창가학회에서 만큼은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는 그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창가학회는 왜 비난받는가? 우선 창가학회가 신종교라는 이유 때문에 비난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뿐만 아니라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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