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문화의 이해 임방울국악제 전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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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연문화의 이해 임방울국악제 전야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임방울국악제 전야제
일시 : 20@@. 09.19 오후 6시 20분 ~ 8시 00분
장소 :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 임방울 국악제의 유래
: 광주에서 태어난 국창 임방울 선생의 뜻을 이어가는 국악계의 신동들을 가리기 위해 임방울 국악진흥회에서 1997년 8월23일 제1회 명창경연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2014년까지 실시하고 있는 전국 단위의 국악 경연대회.
올해로 22번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9월 10일 수요일 서울공연, 19일 광주 전야제를 시작으로 20일~22일까지 판소리기악무용 등의 다양한 전통 공연 분야에서 우수한 실력을 가진 신예들을 뽑아 국악 발전에 기여하고, 나아가 광주전남을 대표했던 국창 임방울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다.
- 국창 임방울에 대한 간단한 소개
: 1905년 4월 20일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태어남. 본명은 임승근.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소리판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쌓고 있었고, 외숙 또한 고종순종 당시의 국창 김창환이었다. 또한 사촌들 역시 외숙의 피를 받아 소리에 재능이 있었다. 이런 환경이 그를 이름난 소리꾼으로 만드는 밑바당이 되었다.
열 살 무렵, 당시 송정리에서 박재실이라는 나주 지방의 명창의 공연을 보고는 큰 감명을 받아, 박재실 문하에서 3년간 수련해 와 를 깨우쳤다. 이후 유성준이라는 명창의 밑으로 들어가 를 배운다. 그리고 25세까지 꾸준한 독학으로 와 까지 차례로 독파한 후, 1929년 9월 서울로 상경하여 본격적인 소리꾼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매일신보사가 주최한 에 참가한 임방울은 혼신의 힘을 담아 ‘쑥대머리’라는 곡을 열창하고, 이 무대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또한 이 ‘쑥대머리’는 이후 그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쑥대머리’는 중 옥에 갇힌 춘향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곡인데, 그의 정서목소리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고, 1933년부터 1941년까지 각종 음반사에서 판소리 음반을 계속 발매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어려운 국민의 삶을 대변하는 감성과 목소리로 소리꾼으로서 지지를 받았다.
해방 후 터진 625 전쟁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예전보다는 활동을 줄어들었으며, 1959년 후반 일본 공연을 떠나는데, 이때 조총련계(일본에 거주하는 북한 세력이 만든 단체)의 공연에 출연한 연유로 귀국하자마자 연행되어 고문을 받는다. 이후 건강이 더욱 나빠져 결국 1960년 김제 공연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다음해 3월 8일 5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임방울은 일제 강점기 당시, 특히 고통 받던 서민들의 삶 속에 맺힌 한을 소리로 풀어 민족의 애환을 세심하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부분이 그를 현재 ‘국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한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 공연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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