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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074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해외 민주화 운동 - 호주
신준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정책리포트 [2018] 제30권 1~23페이지(총23페이지)
2016-17년 촛불·태극기집회 참여자의 민주주의 의식, 그리고 19대 대통령 선거
최종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정책리포트 [2018] 제29권 1~24페이지(총24페이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로서의 ‘민란’
이나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정책리포트 [2018] 제28권 1~20페이지(총20페이지)
불교철학과 민주주의
이종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정책리포트 [2018] 제27권 1~14페이지(총14페이지)
마을공동체와 여성 : 공공성과 젠더화된 돌봄의 딜레마
김영정 ( Kim Young Jeong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2018] 제38권 13~62페이지(총50페이지)
도시 내 마을공동체가 주목받게 되면서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마을공동체 활동의 압도적 비중이 여성참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마을과 여성의 관계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첫째, 마을공동체와 여성의 관계를 돌봄의 가치와 공공성 추구의 차원에서 재조명하고, 둘째, 여성의 임파워먼트와 지역사회 참여 활동 촉진을 위한 거점으로서 마을공동체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에 위치한 3개 여성 마을공동체의 활동과 참여자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분석하였다. 사례 공동체의 여성들은 아이 돌봄을 매개로 한 사적 네트워크에서 시작하여 조직적인 모양새를 갖추면서 사업의 주체가 되는 성장을 경험하고 활동의 공공성을 획득한다. 마을공동체 활동이 개인 차원의 돌봄에 관한 필요와 욕구 ...
TAG 마을공동체, 공공성, 돌봄, 살림, 젠더 Publicness, Care, Gender, Women’s Empowerment, Communi-ty Support Program
대중매체에 표상된 베트남 전쟁과 젠더 이데올로기 : 1964∼1973년 『선데이서울』, 『여원』을 중심으로
이진선 ( Lee Jin Sun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2018] 제38권 63~119페이지(총57페이지)
본 논문에서는 베트남전 파병을 지속 가능하게 했던 이데올로기 장치인 미디어의 베트남 전쟁 재현 양상을 분석하여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한국 사회의 허실을 파헤치려고 한다. 특히, 『선데이서울』과 『여원』이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이는 당시 대중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적 대중잡지로 그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두 잡지를 통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적인 구도의 젠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1960∼1970년대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 군사주의, 개발주의, 반공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한국 여성과 베트남 여성을 동원하였고, 그 속에서 여성은 위치 지어졌다. 미디어는 한국여성의 ‘모성애’, ‘현모양처’ 등의 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어 베트남 파병을 정당화하였고, 병사들의 위로 및 사기 ...
TAG 베트남 전쟁, 젠더, 선데이서울, 여원, 이데올로기, Vietnam War, Gender Ideology, Media Representation, Sunday Seoul, YeoWon
유신 체제 말기의 한미 관계와 정치 위기 : 부마민주항쟁과 동상이몽의 정치사회학
지주형 ( Ji Joo-hyoung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2018] 제38권 123~162페이지(총40페이지)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1979년 한미 관계가 부마민주항쟁과 박정희 유신 정권의 붕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평가한다. (1) 1979년 한미 정상회담은 박정희 정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2) 1979년 한미 정상회담은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세력과 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3) 한미 관계는 1979년 하반기 정치 위기의 배경 요인으로 어떻게 작용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 관계의 상황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일면적 해석을 비판하면서 당시 한미 관계의 양면성을 살펴본다. 1979년 말 박정희 정권과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 간 정면충돌의 이면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철회하고 박정희 정권을 사실상 승인하는 동시에, 인권 개선에 ...
TAG 부마민주항쟁, 한미 관계, 박정희, 김영삼, 카터, Busan-Masan Protests, Korea-United States Relation, Park Chung Hee, Kim Young Sam, Jimmy Carter
인민의 이미지를 붙잡기 : 전후 일본의 민중사 연구를 중심으로
이영진 ( Lee Yungjin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2018] 제38권 163~205페이지(총43페이지)
이 글에서는 전후 일본사에서 ‘정치의 계절’이라 불렸던 1960년대에 이로카와 다이키치, 야스마루 요시오 등 민중 사학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에 나타났던 인민/민중(people)의 이미지에 대해 다룬다. 이 시기는 패전과 더불어 더욱 강화된 메이지 신화가 창출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는 새롭게 만들어지던 ‘근대국민국가’라는 장치에 의해 인민들이 가지고 있던 소박한 꿈이나 희망, 유토피아가 압살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일본 사회 속에서 민중사가들이 과거 인민/민중의 이미지에 주목했던 것은 고도 경제성장, 그리고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한 환등상(phantasmagoria)과 전체주의적 구축물을 돌파하는 제일 주체로서 이미지의 정치성에 주목하면서, 비관주의를 조직하고, 나아가 정치적 수렁 속에서 ‘이미지의 공간’을 발견...
TAG 인민/민중, 이미지, 메이지 일본, 환등상, 유토피아, People, Image, Meiji Japan, Phantasmagoria, Utopia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의 결성과 원수폭 금지운동
양동숙 ( Yang Dong Sook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2018] 제38권 206~254페이지(총49페이지)
본 연구의 목적은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의 결성과 활동을 일본의 원수폭 금지 운동과 관련시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전후 히로시마 조선인 피폭자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피폭자 구제’와 ‘핵무기 폐기’라는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그 맥락을 구명하는 것이다. 1975년 8월 2일, 재일 조선인 최초의 원폭 피해자 운동단체로 조직된 조피협의 결성 배경에는 1950~1970년대를 거치면서 보다 열악해진 조선인의 삶의 변화와 일본 사회의 강한 배외주의, 그리고 1955년 이후 히로시마에서 고조된 원수폭 금지운동과 1960~1970년대 손진두 수첩재판을 통해 각성된 일본 시민단체의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에 대한 가해성의 자각이 있었다. 조피협은 결성 후 피폭자 구조와 핵무기 폐기라는 원수폭 금지운동의 목표를 공유하며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일본...
TAG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 원수폭 금지 운동, 재일 조선인 원폭 피해자, 북한 원폭 피해자, 이실근, Hiroshima Prefecture Korean Victims of an Atomic Air Raid Council(=Hiroshima-ken Chosenjin Hibakusha Kyogikai), Nuclear Bomb Ban Campaign, Japanese Korean A-bomb Victims, North of Korean A-bomb Victims, Lee Silkeun
1987, 내가 겪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김정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억과 전망 [2018] 제38권 257~294페이지(총38페이지)
본 연구의 목적은 ‘히로시마현 조선인 피폭자 협의회’의 결성과 활동을 일본의 원수폭 금지 운동과 관련시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전후 히로시마 조선인 피폭자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피폭자 구제’와 ‘핵무기 폐기’라는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그 맥락을 구명하는 것이다. 1975년 8월 2일, 재일 조선인 최초의 원폭 피해자 운동단체로 조직된 조피협의 결성 배경에는 1950~1970년대를 거치면서 보다 열악해진 조선인의 삶의 변화와 일본 사회의 강한 배외주의, 그리고 1955년 이후 히로시마에서 고조된 원수폭 금지운동과 1960~1970년대 손진두 수첩재판을 통해 각성된 일본 시민단체의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에 대한 가해성의 자각이 있었다. 조피협은 결성 후 피폭자 구조와 핵무기 폐기라는 원수폭 금지운동의 목표를 공유하며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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