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식문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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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일 식문화 비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문화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성립된다. 음식문화 역시 자연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의 식문화를 비교하려면 국토환경의 차이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국토는 일본열도라고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지질 시대의 침강과 융기가 심하여, 호수가 많고 해안선의 출입이 잦다. 이러한 환경은 항만과 어항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고, 복잡한 해저의 지형과 지질은 다양한 플랑크톤과 해조를 자랄 수 있어 수자원을 풍부하게 하였다. 또한, 북상하는 쓰시마 해류와 남하하는 리만 해류가 동해부근에서 마주치기에 세계3대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열도가 남북 간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 다양한 식자원이 있다.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기후는 쌀 재배에 적합하며, 삼림도 무성하다. 한편, 비가 많이 내리는 관계로, 목축업은 발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쉽게 고기를 구할 수 없어 菜食과 魚食을 주로 하는 식생활이 형성되었다. 물론 일본인들이 채식을 하게 된 이유 중에는 불교의 영향도 크지만, 기후의 영향이 사뭇 크다.
문화적 조건을 보자면, 일본열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사이에 위치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태평양쪽에서는 아무런 외래적 문명 파동이 없었다. 새로운 외래 문명은 주로 동해 쪽(한국. 중국 등)에서 왔다. 해류와 계절풍의 영향으로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으로 가는 길은 아주 순탄했다. 덕분에 일본은 한국중국의 문화는 물론 중국 문화에 유입된 중앙 아시아, 동유럽의 문화 요소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한국일본의 주식?
대부분의 아시아국가가 그렇듯, 양국의 주식은 죽밥면떡으로 일치한다.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면, 지금은 밥이 주식으로 생각되고, 죽이나 떡은 별미부식 등으로 생각되지만, 고대에는 죽밥면떡은 다같이 주식이었다. 아니, 오히려 고대에는 밥보다 죽떡면 등이 밥보다 앞서는 주식이었고, 밥 또한 솥이 발명되어 지금의 밥의 형태(낟알 상태 그대로 쪄서 내는)가 되기 전에는 찐 밥(떡밥)의 형태에 가까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곡물 요리 발달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쑨 죽 → 찐 밥찐 떡 → 지진 떡지진 밥 → 솥을 이용한 밥짓기, 엿, 국수와 만두] 로 추정할 수 있다
죽밥
미곡으로 된 주식의 최초의 형태는 ‘죽’이었고, 시루가 발명되면서 찐 밥이나 떡의 형태의 주식이 나타났으며, 솥이 발명되어 지금과 같은 형태의 밥이 완성된 것은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되는데 확실하진 않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밥이 완성되고, 곡물(쌀)수확량의 증가 등에 요인에 의해 쌀밥이 상용주식이 된 이후, 초기 농경시대에 최초의 음식으로 상용되어온 죽은 代用主食別味保養食救恤食 등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떡이 의례적 용도로 쓰였다는 점에서도 양국은 일치한다. 예를 들자면 설날에 조상에게 떡을 바치고, 한국에서는 떡국, 일본에서는 煮를 먹었다. 떡은 농경을 주로 하던 동아시아의 고대사회에서 밥보다 앞서는 주식이었다. 그런데 솥이 발명되어 잡곡을 낟알 상태 그대로 쪄서 내는 밥짓는 기술이 생기면서 떡이 주식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명예퇴진한 떡은 신격(神格)을 가지는 음식으로 변했다. 그래서 종교의례나 세시명절 때 가장 핵심이 놓이는 제물로 떡이 자리를 잡았다. 고대 제의에서 제물로는 동물이나 가축이 으뜸이었을지 모르나 농경에서 중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 따위를 제물로 바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다음으로 중요한 먹을거리인 곡물을 동물과 똑같은 상태로 여기면서 떡을 만들어 제물로 올리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한국의 종교의례에서 떡은 신령을 상징하는 제물이다. 유교식의 제삿상에는 집안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정사각형의 편 틀에 맞추어 네모 반듯하게 한 장 썰기를 하여 순서에 따라 똑바로 편틀에 고여 담고, 위에 웃기를 얻는다. 무(巫)의 굿상차림에도 증편,계면떡,백설기,거피팥떡,화전,주악,싱검초편,시루편,군뱅이떡 따위가 상에 오른다. 이들 떡은 제의가 끝나면 사람들에게 나누어져 신령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데 매개물 구실을 한다.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데도 떡이 사용된다. 요사이는 보기가 드물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새로 이사를 하면 시루떡을 마련하여 이웃에 돌리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떡을 통해 한 식구임을 증명하려 했다. 그보다 이전에는 시집갔던 딸이 친정에 올 때나 시가로 갈 때 양가에서는 절편이나 인절미를 큼직하게 만들어 동고리에 가득히 채워 들려 보낸다. 제사나 잔치를 하면 떡을 싸서 이웃이나 손님께 드렸다. 그만큼 떡은 상징적인 의미로 사람들 사이에서 교환되었다.
고대 일본에서는 떡을 ‘모찌이이(餠飯)라 불렀다. 고대 일본인들이 떡을 밥으로 먹었음을 이 말에서 알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일본의 떡은 헤이안(平安)시대에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떡에 복(福)이 담겨 있다고 여겨서 의식이나 신령제사 때 주로 제물로 사용했다. 오늘날 양력 1월 1일 일본인들은 ‘鏡餠(かがみもち)라는 떡을 만들어 집을 지켜 주는 수호신령에게 바친다. 모양이 거울처럼 둥글기 때문에 ‘거울떡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떡은 쌀가루로 만든다. 나무로 만든 제기 위에 흰 종이를 깔고 각기 크기가 다른 두세 개의 鏡餠를 포개어 얹어 놓고 그 사이나 맨 위에 곶감·다시마·귤·새우 등으로 장식해 놓는다. 鏡餠는 1월 1일 신령에게 바쳐진 후 집안마다 4일에서 7일, 혹은 11일에서 30일까지 그대로 둔다. 가장 길게 두는 집은 같은 해 6월 1일에 치우기도 한다. 30일 안에 젯 상에서 치운 鏡餠는 불에 구워 부드럽게 한 다음, ‘조니(煮)라는 장국에 넣어 먹는다.
참고문헌
참고자료>
일본식생활사 /와타나베 미노루 /신광출판사
일본문화론/ ?
食과 料理의 世界史 /Katie Stewart /東明社
음식으로 본 동양 문화 /김태정,손주영,김대성 /대한교과서
교양을 위한 음식과 식생활 문화 /김기숙,한경선 /대한교과서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