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 8 대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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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당송 8 대가 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한유(자는 창려사람으로 한문공(韓文公)이라고도 함.)
문학론
3세 때 고아가 되어 형수 정부인의 손에 자람. 어렵게 자랐으나 정원
생애
못함. 후에 관직생활을 하다 양산령으로 귀양을 감. 헌종이 즉위하자 다시 관직에 복귀함. 헌종이 법무사로부터 부처의 뼈를 궁중으로 맞아들이자 [간영불골표]를 올려 불교 배척함. 이것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 조주자사로 다시 귀양감. 목종이 즉위하자 다시 관직생활을 함.

유교 윤리 바탕으로 형식만을 중시하는 변려문 반대하고 고문(단순히 한 대 이전의 글을 뜻하는 것이 아닌 유가적인 도가 담겨 있는 것이어야 함)쓸 것을 주장. 또한 유가의 도가 맹자 이후로 끊겼다고 주장하면서 유학의 도통도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의욕 보임.
산문
시를 쓰는 데 있어 한 낱말의 선택과 한 구절을 이룩하는 데도 노력하여 낡고 평범한 말은 피하고 독특하고 빼어난 표현을 추구함. 또한 시어를 다듬고 함축적인 표현을 씀으로 자신의 마음에 쌓인 모든 것을 시에 담아내려고 노력함. 때문에 그의 시가 산문적이고 기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음. 하지만. 후세의 시(특히, 송과 청대의 시)에 큰 영향을 줌.형식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그 시대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등 다각도로 발전시킴.
문장 표현에 있어 진부한 말 버리고 개성적이고 구체적인 표현 쓸 것을 주장. 때문에 그의 글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고 생동하는 리듬이 살아있음. 내용에 있어서도 유가의도, 불교 배척, 문학에 대한 견해 등을 쓰기도 함. 하지만 황제나 고관들에게 올린 글 등에 아첨이라고 볼수밖에 없는 대목이 보이기도 함.
생애
2.유종원(자는 자후(子厚), 하동사람임.)
문학론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정원 9년에 진사가 되어 여러 관직을 지냄. 순종이 즉위한 뒤 유종원은 여러 가지 정치 개혁을 한 왕숙문에게 인정받음. 그러나 왕숙문이 실패한 후 영주사마로 귀양 갔다 유주자사로 옮겨감. 이곳에서 많은 저술을 하고 또한 유주 사람들은 그를 유주라 칭하고 친부모처럼 따랐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