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유교적 가치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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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자와 유교적 가치의 재평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자와 유교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
0. 들어가며
수업시간에 13경 중 『논어』를 공부하면서 잠시 언급되었던 내용 중에 공자의 사상에 대한 중국사회 내에서의 태도변화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즉, 공자의 사상은 ‘효제’에서 시작하여 통치원리로까지 이어지며 대표적인 유교의 성격을 규정하였다. 그러한 통치원리는 결국 ‘덕’에 의한 통치를 뜻하며 이는 군주의 전제정치를 옹호하는 논리로 이용된다. 부모가 아직 미성숙한 아이를 다루고 또 아이는 부모에게 효도하듯 군주도 백성을 그렇게 대하고 백성도 군주에게 복종해야하는 것이다. 이를 비롯한 유교 전반적으로 가진 보수적인 특성 때문에 문화대혁명과 같은 사회의 격변기에는 공자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역시 와 같은 책도 등장하며 우리사회 속에 내면화된 유교 사상에 대한 비판이 일어난바 있다. 또한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시대에 따라 유교적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유교적인 것은 무엇을 뜻하며, 정확히 비판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지, 어떻게 공자를 재평가해야할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 ‘유교적인 것’
우선 ‘유교적인 것’ 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유교적인 가치관이 가지는 모호함 때문이다. 흔히 온갖 부정적인 사회현상의 서술어로 유교가 등장하곤 하기에 비유교적인 것까지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유교적이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특성들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유교는 조선시대 유교의 폐습으로 지적하는 개가 금지, 서얼 차별, 무도한 효도의 장려, 종교와 기타 학술에 대한 배타성 등의 정치 권력적인 의도가 강하게 배인 특성들보다는 문화적 정서, 그리고 사회적 풍습 등으로 내면화 혹은 체질화되어있는 특성들이다. 즉, 인격 수양, 인륜도덕의 숭상, 인간에 대한 사랑, 청렴 절의의 존중, 학문을 숭상하는 문화, 가족 문화, 민본주의적인 정치 문화 등의 긍정적이고 순화된 언어들로도 불리지만 권위주의, 가부장주의, 정실주의, 가족이기주의, 여성에 대한 비하, 비과학적, 봉건적, 수구, 보수반동, 허례허식, 공리공담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규정되기도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부르는 ‘유교적’이라는 것을 전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중요한 건 유교는 역사적인 맥락 하에서 다르게 인식되고 변화하며 해석되어 왔다는 것이다.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각 시대의 현실에 요구되는 변화를 거치고 있는 고정화되지 않은 개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2. 왜 유교는 보수적이라 평가받는가.
가장 큰 이유는 한국근대화 시기에 “위정척사”로 대변되는 반 개화주의로 인해 일제의 지배를 받았고 결국 산업화에 뒤떨어진 것이 보수적인 유교의 영향이라는 인식이 널리 팽배 하였다. 유교가 보수적이라 평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사농공상으로 대변되는 신분의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관 지향적이며, 가부장적 권위를 숭상하며,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 통치 이념으로 인해 사회는 모든 면에서 보수화 되어갔고, 그 결과 명분에 사로잡혀 실사구시의 정신이 무시되어, 사회적 낙후를 가져 왔으며 문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무를 천시하는 바람에 국가 안보에 풍전등화의 위기도 수차례 겪었다. 또한 “입신양명”이라는 좌우명을 신앙처럼 간직하여 관료적 출세를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등 일반 국민들과의 삶과는 동떨어진 권위적인 사상이 관료층을 지배했다.

3. 문화대혁명과 공자-문화대혁명의 와중에 전개된 전통부정의 문제
일례로 유교가 가장 대표적으로 공격받았던 때인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살펴보자.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간 모택동에 의해 주도된 국민정신 개조 운동이다.
중국 민족의 머리 속에서 공자의 유교를 비롯해 모든 잡다한 관념들을 철저히 세척시키고 오직 중국화된 공산주의 사상인 모택동 사상만을 가득 채우려 했던 극좌 사회주의운동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1965년 상해시 당위원회 서기였던 요문원이 북경시 부시장 우한이 쓴 역사극 해서파관을 비판한 사건의 처리를 두고 유래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제10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임표의 죄악상이 공식 규탄된 이후 전개된 비림정풍운동이 1972년 8~9월부터는 임표와 공자를 함께 비판하는 비림비공운동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 이유는 임표의 쿠데타 계획서인 ‘571 공정기요‘에 실패하면 자살하라는 뜻인 “성공하지 못하면 인을 이루도록 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논어』의 ’살신성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공자가 역시 『논어』를 통하여 말한 주나라의 이상적인 제도로서의 ‘예’를 노예제도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임표의 경우는 이 예를 구체적으로 국가주석을 설치한다는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바꿔놓은 것이라 하여 비난하는 이른바 극기복례비판 등 많은 수난을 겪어야 하였다. 물론 이기간에 공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병행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즉, ‘비림’이란 이제까지처럼 입으로만 유교를 부정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제부터는 유교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긍정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세력을 철저히 가려내어 말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공’은 공자를 대표로 하는 중국 민족의 전통적 가치관을 부정하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당내의 반모, 반청파에 대한 사인방 등 문화대혁명파의 반격으로, 새로운 적대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인방이 체포된 후 그들이 비림비공의 이름을 빌려 주은래를 비롯한 당이나 군부의 간부를 공격하였음이 밝혀짐으로써 공자는 교육자로서 곡부의 공자묘도 수복되었다.
문화대혁명은 한때 만민평등과 조직타파를 부르짖은 인류역사상 위대한 실험이라고 극찬을 받았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운동으로 약 300만 명의 당원이 숙청되었고, 경제는 피폐해지고 혼란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이 중국에 남긴 것은 끝없는 전통에 대한 부정, 자기부정의 상처였으며 중국이 수 천년 간 쌓아 온 학문, 문화적 업적을 10여 년 간의 기간으로 인해 송두리째 잃을 위기에 처하였다. 물론 경학 연구에 있어서도 자의적인 해석, 특히 모택동 어록에 입각한 해석이 끝없이 뒤따랐으며 이는 경전 본래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였다.
중국인이 공자를 추앙하는 이유는 공자가 위대한 철학사상을 건립했기 때문도 아니고, 공자가 위대한 성인 군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공자가 중국 민족의 정신문화라는 저수지의 ‘밑바닥’을 정확하게 집어내어 분명하게 구체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은 그 저수지의 밑바닥을 청소하고서 다른 것으로 채우려 했던 무모한 시도이므로 성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돼 오고 있다. 그것은 문화대혁명이후 중국인들이 보여준 유교 긍정의 열기에서 곧바로 반증된다. 유교적 가치를 철저히 부정했던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지 10여 년 만에 이번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를 놓고 찬성과 검토의 토론 열기로 중국 대륙이 후끈 달아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대혁명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유학 그 자체가 비록 현대 사회의 모습에 알맞지 않게 보여질지라도, 그 자체를 부정하면 안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으며, 결국은 인정해야 할 우리의 근원이다. 특히, 유학 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공부 없이 유학 전체를 단순히 "봉건적인, 구체제의 유습" 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전통문화를 경시하는 태도로 인해 일어난 문화대혁명이 중국사회에 끼친 엄청난 해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유교적 가치관을 현대의 상황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이냐에 있다. 다시 말해서 유교의 어느 성분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를 놓고 다양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한국사회의 유교적 가치- 김경일씨의 책 내용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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