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 대한 한국의 배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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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대한 한국의 배타주의
1. 도입부
한 외국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외국인을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 외국인은 하다못해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어봤지만, 모두들 재대로 듣지도 않고 모른다고 고개를 내 저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외국인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쓸쓸이 거리를 헤매 여야만 했다. 위 사례와 같이 한국 사람은 유색인에 대한 배타주의 성향이 강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배타주의가 심하지 않을까? 오히려 살해와 폭력으로 한국보다 심하다면 더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 경우 2000년 7월 샌디에이고 근처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의해 20대 멕시코 불법 이민자가 맞아 죽었고 러시아에서는 1997년부터 유색 인종 거주자에 살해 폭행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이나 러시아같이 인종이나 나라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중국동포 및 귀화한 외국인마저 밀어내는 한국 특유의 배타주의는 무엇인가?
2. 본론
1) 농경생활에 의한 배타주의
한국은 주로 농경생활을 해온 민족이다. 농경생활을 한 민족들의 특징이 바로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성향이다. 대체로 동아시아가 농경생활을 하여서 그런지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 농경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다. 토지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자 생계를 유지하는 기본이다. 그렇다보니 토지에 대한 강한 소유욕과 애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러한 농경 사회에서 이방인이 등장하게 되면 토착민들은 당연히 경계 하게 된다. 이이방인들이 행인이면 상관없지만 만약 빼앗기 위해 왔다면 자신들의 토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하게 된다. 농경사회에 출현한 이방인 집단이 머물게 되면 심각한 경쟁사회가 펼쳐진다. 토지를 두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와 생계수단을 조금이라도 얻어내려는 자간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는 이방인 없이 안정되고 자신들의 기반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보니 외지인이 들어오게 되면 아무래도 배타적인 성향을 띈다. 서구 역시 배타적인 성향이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서구의 역사는 민족 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유럽이라는 작은 무대를 배경으로 수없이 이동했다. 그렇다보니 영토를 지키려는 나라와 영토를 빼앗으려는 나라간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전쟁을 통해 싸움과 약탈을 일삼으며 그들의 마음 한구석엔 보이지 않은 폭력성이 잠재되어 갔다. 한국은 주로 땅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했고, 서구는 주로 땅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했다는 점(폭력과 약탈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하여 서구는 배타적인 경향이 폭력으로 정착되었고 우리나라는 회피하는 경향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유색인종에 대한 배타주의
한국인들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같은 유색 인종의 노동자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한 방글라데시의 노동자 A씨는 일을 빨리 못한다는 이유로 이모씨가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렸고 우즈베키스탄인인 압둘라함씨는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구둣발로 밟혀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이렇게 유색인종에게 심한 차별을 하는 이유는 한국인에게 있는 인종주의 때문이다. 한국인은 백인에게는 친근한 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계통의 유색 인종에 대해서는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차별의식의 시작은 19세기 조선 말기의 엘리트 들이 서구 중심의 인종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백인은 우수하며 인디언이나 흑인 등의 까만 피부를 가진 자를 배척하고 멸시하여 지금의 배타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3) 민족주의로 인한 배타주의
일본민족주의
일본은 외국침략이나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 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압박을 합리화하며 식민지나 반식민지의 주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행동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우익 단체가 있다 이단체의 기본적인 특징은 1868년부터 1945년까지 있었던 일본 천황 시대, 즉 일본 제국 시대의 찬양이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1868년부터 1945년까지 77년 동안 있었던 현상에 불과하다. 반대로, 도쿠가와 시대와 전국 시대 등 옛 제국 시대(1868년 이전)의 현상은 전혀 안중에 없는 것이 특징이다. 널리 알려져 있는 우익 단체 행동으로 주로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한 검은색의 중대형 차량을 이용하여 주로 도심지에서 일본 천황에 대한 찬양이나 국수주의 성향의 언행을 선전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우익단체의 대표적인 여러 가지 우익 단체를 정리하는 연락 기관으로서 전국 조직인 ‘전 일본 애국자 단체 회의(전애회의)’가 있다. 전 일본 애국자 단체 회의는 국체호지와 반공 협동 전선을 2대 강령으로 내걸고 일본의 재군비, 천황제 옹호를 주장했으며 일본교원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둘째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사건 이 있다 이는 2001년 8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으로 처형된 14명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함으로써 한국·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비난을 샀음은 물론, 외교 문제로까지 불거진 사건을 말한다. 고이 즈미 는 일본의 패전기념일인 8월 15일에 참배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중국 양국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이틀 앞당겨 13일에 참배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주변국의 비난을 무마하고,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자신의 선거 공약이었던 공식 참배를 현실화하는 한편, 10여 년 간 계속된 일본의 경제 침체를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부활 등을 통해 수습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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