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룡의 한국 종교이해 연구 논찬

 1  박형룡의 한국 종교이해 연구 논찬-1
 2  박형룡의 한국 종교이해 연구 논찬-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박형룡의 한국 종교이해 연구 논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형룡의 한국종교이해』연구에 대한 논찬
한국교회에 장로교 신학을 정립시켰다고 평가받는 박형룡을 김정준은 “한국 보수주의 계통의 교회와 신학 형성, 그리고 그 진로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러한 교파적인 관점을 떠나서 한국 신학사라고 하는 차원에서 교파를 초월한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또한 유동식은 한국 신학계의 자유, 보수 양파의 신학적 싸움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보수주의적 정통신학의 보루를 이루고 있는 이는 박형룡이다”라고 단언하였다. 한편, 이러한 평가와 함께 그가 한국 신학을 고사시키고 동결하였으며, 칼빈주의자이기는 하나 칼빈학자는 아니라는 혹평이 있기도 하다. 이종성, “박형룡과 한국장로교회,‘ 신학사상 25(1979여름), p.58.
발제조는 한국 보수적 기독교계에서 박형룡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그가 가진 한국 종교 이해에 대하여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발제를 전개하였다.
1. 김양선은 에서 박형룡을 “초대 선교사들의 보수신앙에 기초하여 설립된 한국 장로교회는 제일 희년에 이르러서 한인 보수주의 신학자 박형룡에 의하여 지도되고 있음이 역연(歷然)하게 되었다”라고 말함으로써 박형룡이 초기 선교사들의 보수신앙을 견지하였음을 말한다. 유동식 또한 그가 초대 선교사들의 청교도적인 율법주의와 보수주의적 정통신학을 고수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이어받은 초기 보수적 선교사들의 한국종교이해는 어떤 내용이었는가? 우리는 그를 통해 초기 보수적 선교사들의 한국종교이해를 유추할 있는가? 또한,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았던 선교사들의 종교 이해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2. 발제조는 박형룡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 상황에 따라 각각 다음과 같은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주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정통주의, 보수주의, 근본주의, 칼빈주의, 나아가서 한국형 칼빈주의적 정통주의(6p), 총평으로 한국적 토착 보수 기독교(7p) 등. 이들 용어가 각각 박형룡에게 소급되어 사용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발제문의 통일성을 위해 두, 세 개 정도의 용어로 정리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3. 박형룡의 한국종교이해를 살펴보는데 있어 그의 비교종교관은 어떠했으며 그에 따른 타종교에 대한 입장이 핵심적으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발제문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박형룡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는 배타주의적 정복주의라고 이해되는데(7p), 발제조는 덧붙이기를 박형룡은 한국 및 세계종교에 대해 ‘진리의 소량’을 인정하고 있어 기존 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입장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박형룡에게 있어서 그가 포괄주의적 성취설의 입장에 서 있던 때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발제조의 견해를 듣고 싶다.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구분은 다음을 참조. 김승철 편,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I』, 나단, 1993, pp13~17.
4. 박형룡은 자신이 프린스턴에서 배운 변증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한국의 다종교 상황속에서 기독교의 우월성을 변증하려 하였는데 자타?가 대체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타종교 이해는 표피적이며 내용도 충실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된다. 1930년대에서 그의 타종교에 대한 기초적 연구는 마감된 것이 아닌가? (그의 은 1978년에 첫 선을 보이기는 했지만 1930년대의 박형룡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 강화된 타종교에 대한 그의 ‘정복’이란 말을 받쳐줄 신학적인 이해는 존재하는가? 다시 말해 1960년대 이후 박형룡은 더욱 강화된 정복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이 입장을 가지게 된 신학적 근거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당시 교회 분열과 NAE측(박형룡) 지지세력의 교회정치적 개연성도 또 하나의 근거라고 해야 하는가?(통합, 합동측 분열에 있어 박형룡의 3천만환 유용사건이나 WCC 용공성 시비 등) 민경배, 『韓國基督敎會史』,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pp.481-482. 및 장동민, 『박형룡의 신학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8, pp.377~378.
5. 발제자는 박형룡의 에큐메니즘에 대한 시각을 논하면서 그의 발이 약간은 타종교에도 걸쳐져 있는 것처럼 설명하였는데(5p), 정말 그러한가? 그는 보수, 자유의 씨름판에서만 에큐메니즘에 대해 말한 것은 아닌가? (유동식의 글을 참조하시오). 다시 말해 박형룡에게서 교리적 차원의 에큐메니칼 노선이 발견되는가? 아니면 단지 협력적 차원에서 에큐메니칼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후에 그는 NAE측 참여도 후회하고 신복음주의라고 비난하며, RES, WEF 등을 거부하고 ICCC만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Ibid., 장동민, pp.381~388.
6. 발제조는 한국 종교사에 있어서 박형룡을 평가할 때, 한국적 토착 보수 기독교의 지평을 연 것으로 보고 있다(7p). 이러한 평가는 박형룡의 신학을 나름의 토착화 신학으로 본다고 하겠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내용이 토착화를 담고 있는지 약간의 내용 서술이 필요해 보인다.
7. 박형룡의 보수 정통주의 신학, 발제조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적 토착 보수 기독교의 지평을 연 그의 신학은 현재 다원적 종교상황에 처해 있는 한국 종교사적 현실에서 한국 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합동측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세력의 정통 보수적 입장을 아직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성리학이 중국의 신유학을 더욱 완성시킨 듯한 근본주의적 색채를 보였던 것을 떠올리게 하며, 그의 신학도 보다 강화된 근본주의의 모습을 띠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영향력은 한국 종교사(혹은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향후 어떤 결과 낳게 될 것인지 발제조는 물론 여러 학우들과 함께 토론하고 싶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