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 현진건의 생애와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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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빙허 현진건의 생애와 작품 세계
1. 현진건의 생애
현진건은 구한말 통신원 전보국장을 역임한 연주(延州) 현씨(玄氏) 현경운과 이정효 사이에서 4남으로 1900년 음력 8월 9일에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조선조 대대로 역관을 세습할 정도로 많은 역관을 배출하였고 구한말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사회 변동기에는 정치, 문화 엘리트를 많이 배출했다. 그는 1910년인 열한 살 때 생모를 여의고, 열여섯에 대구 부호인 경주 이씨 집안 진사의 딸 순득과 결혼한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학교에서 공부를 한 후, 귀국하여 이상화, 이상백, 백기만 등과 함께 동인지 를 간행했다. 1919년 당숙인 ‘보운’의 양자가 되었으며 그해 조선 웅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외국 소설을 번역 발표하다가 처녀작 에 이어 「빈처」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20년에 에 발표한 그의 처녀작 는 황석우로부터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후에 기술면에서는 비교적 딴 작가들보다 우수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 , , , 등이 모두 그 다음해부터 발표해 나간 작품이며 그는 이로 말미암아 당시 동인 중 단편 작가로서 그리고 사실주의 작가로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근대 문학사에 큰 공적을 남겼다.
그는 문필을 하면서 기자로 생활하였다. 1921년 조선일보에 입사하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어 동명시대일보 등을 거쳐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 1937년까지 기자 생활을 계속했다. 1925년경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고, 조선일보 합평회에 참여하고 문예지의 작품 월평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5년 작품집 을 내고서 후에 의 일부가 되었던 작품을 발표하다가 중단했을 뿐, 1927년 7월 을 발표할 때까지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간에 그는 동아일보 정간, 양조모의 별세, 부암리로 이사, 형의 죽음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태를 당하였다. 이 기간에는 창작보다는 몇 편의 신변잡기적인 문장을 발표하였고, 그 동안에 발표하였던 번역소설을 묶어 간행하였다. 그는 바쁜 신문기자 생활에서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역사의 현장 순례를 나서고 주나라 하강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를 4회에 걸쳐 발표하다가 중단한다.
는 양모의 죽음, 형과 형수의 죽음 등 충격적인 집안일을 당하면서 그 나름의 문학적 진실을 확인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33년 12월 20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34년 6월 17에 끝낸다. 1936년 동아일보 4차 정간으로 구속되고, 1937년 신문사를 그만 두고 양계로 생활을 꾸려가면서 역사소설 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삶에 대한 자신의 진실을 그대로 담아 낸 작품으로써 그의 문학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어 를 연재하다가 중단하고, 도 금서 처분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 작품인 를 에 연재하다가 완성을 못 보고 딸의 결혼 한 달 후인 1943년 4월 25일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2. 작품세계
그의 작품은 크게 세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 소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시민사회에서 각 개인이 각자 자기 식으로 생활해 나가는 와중에 따르는 사랑과 돈과 직장의 문제를 중시하여 작품화하였다. 중기 소설은 초기 소설보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사회의 모순을 탐구하는 양식으로 변모하였다. 사회에 대한 방관자나 국외자의 세계 인식을 벗어나 현실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감시자 또는 참여자로서 사회의 궁핍과 황폐함을 인식하고 남성 지배의 폭력성을 비판·성찰하며 구조적인 사회의 허위성을 통찰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국권을 회복한다는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을 자각하는 일종의 이념 지향적인 성향과 관련을 갖는다. 지식인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비판적 태도를 함양·심화시켜 주는 기능을 담당한 자들로서 일제 통치를 받던 시기 한국 지식인들의 몫은 식민지 상황의 극복에 있었다. 그것을 위하여 현실적 삶의 조건에 대해 투철한 의식을 갖고 식민 통치 상황을 극복하려 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식민 통치 체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지식인이나 작가들이 지녔던 민족적 이데올로기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신념 없이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시계를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의식이 문학에서 요청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대륙침략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었던 시기였으며, 소설도 대중을 위한 상품의 하나로 취급받게 되면서 대중성이 강화되었고, 정치성 강한 소설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자연히 사회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으며 문학이 주는 즐거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풍자문학과 순수 지향의 소설, 역사물과 통속소설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또한 장편소설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인 장편소설의 시대가 열렸다. 현진건은 1930년대 군국주의 최악의 시대에, 지난 시대의 문학 이념이었던 민족적 이데올로기는 변질되거나 숨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이자,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유토피아 의식을 갖고 소설을 쓰게 된다.
1) 초기 - 신변소설(빈처, 타락자, 술 권하는 사회), 1920년~1923년 발표이전, 식민지하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젊은 지식인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2) 중기 - 사실주의 소설(운수좋은 날, 불, 고향), 1923년 셋째형의 옥사 이후 동아일보 신문기자생활에 전념하다 작품 활동 중단. 객관적 현실에 입각한 작품, 식민지 현실 문제를 다원적으로 탐구하였다.
① 황폐한 시대 상황을 탐구한 작품 - 운수 좋은 날, 고향
② 가부장적, 봉건적 성의식을 비판한 작품 - 불, 정조와 약가
③ 사회의 허위성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 작품 - 피아노, 할머니의 죽음
3) 후기 - 애정장편소설역사소설(적도, 무영탑), 1936년 집필시작, 영웅적, 귀족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취급하던 과거의 역사소설과는 다른 서민계층을 부각시켜 그들의 비극이 사회적 모순과 일치하게 하는 탁월성을 보여주는 역사소설이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현길언, (건국대학교출판부, 1995)
현길언, (태학사, 2000)
현길언, (이우출판사, 1988)
윤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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