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생명윤리철학 기사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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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철학 기사 비평
1. 기사제목: 임신 중 병원도 못 가고.. 어느 女軍중위의 죽음
단 한 곳의 산부인과도 없던 강원도 인제군 최전방 부대, 그 곳에서 이신애 중위는 임신 7개월의 몸으로 한 달간 50시간의 초과 근무를 하다 임신성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의 군대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열악한 지, 또 군대 내의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보여준다. 무엇이 이 중위를 죽게 만들었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16개 국군 병원 중 산부인과가 설치된 곳은 5곳뿐이다. 가까운 산부인과라도 가려고 하면 그곳은 위수지역 밖이라 휴가를 내고 가야한다. 일단 산부인과 검진을 자주 받아야 하는 임산부를 분만 취약지역인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게 한다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부인과와 인접한 지역에서 근무하다 몸에 이상을 느꼈을 때 바로 검진을 받았더라면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 본 대안은, 임신한 여군들을 산부인과와 인접한 지역으로 보직을 조정하여 배치하고 만약 임산부를 대체할 인력이 없다면 그들을 위해 휴식이나 병원 진료를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등 모성보호를 강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더 문제가 되는 점은 육군 본부가 이 중위의 사망 원인을 두고 군 복무와는 상관이 없다고 보고 이 중위의 죽음을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분명 이 중위는 임신 중 휴가 기간이 아닌 근무 중에 사망하였다. 더군다나 이 중위는 마지막 산부인과 검진에서도 이상이 없었으며,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초과 근무를 했다는 사실에도 육군 본부는 정말이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판단을 내렸다. 만삭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대신 일 할 사람이 없어 더 많아진 업무량을 감당하다 일어난 이 중위의 죽음이 순직(=직무를 수행하는 중에 사망)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임신 중인 여군에게 초과 근무를 하게 한 것 까지 모자라 그 헌신마저 인정해 주지 않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결정이었다.
관련 기사를 더 찾아본 결과, 육군 본부는 뒤늦게 재심의를 거쳐 순직 처리를 했다고 한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로, 국민 권익 위원회가 이 중위의 죽음을 과로로 인한 순직으로 인정해 달라고 권고하지 않았다면 이 중위의 죽음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뒤로 한 채 그대로 묻힐 뻔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 열악한 군 의료체계와 군의 낮은 모성 보호 인식이 계속 되어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육군 본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의 시스템과 제도, 또 임신한 여군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2. 기사제목: ADHD “과잉진료 심각하다”- “아직도 숨은 환자 많다”
기사에서는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서 많은 우려가 되고 있다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이것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장애에 대해 많이 인지를 못하고 있는 편이지만, 미국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 6명 가운데 1명이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흔하게, 대부분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의사들의 의견이 많이 엇갈린다.
ADHD진단을 받고 나면, 의사들은 행동·인지 치료와 함께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런 마약성분의 각성제를 이용한 치료를 두고 과잉진료가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마다 내성적일수도 있고, 조금 더 활발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단순히 또래보다 많이 활발하거나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무작정 병원에 데려가는 경우는 오히려 아이의 정신발달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특히나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 의원에 간다면 아이는 하루만에 ADHD 진단을 받고 약 처방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는 명백히 과잉진료라 볼 수 있다. 높은 교육열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자식들의 능력이 또래집단보다 떨어지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데, 이러한 요인도 ADHD의 과잉진료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아이는 정상적인데 집중력이 약해 학업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빨리 치료를 해달라는 부모, 그리고 이와 같은 열성적인 부모들을 이용하여 병원의 이익에만 신경 쓰는 의료인. 이 둘 모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정말 증상이 심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의 경우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다. ADHD를 앓는 비율은 세계적으로 비슷한데, 우리나라는 이에 견줘 크게 못 미친다고 한다. 이는 증상이 있어도 그냥 넘긴다는 얘긴데, 소아·청소년이 정신과 병원에 드나드는 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듯 ADHD 진단에 관한 문제에서는 먼저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곁에서 그 증상을 가장 먼저 판단하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주장에 휘둘려 멀쩡한 아이에게 약을 준다거나, 편견이 두려워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은 장래 아이에게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또한 진단을 받기 전, 부모의 태도 변화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의력이 산만하다고 다그치고 체벌하던 부모가 태도를 바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증상이 상당히 개선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따라서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본인의 판단만 믿고 일방적으로 낙인을 찍는 것 보다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이 병에 대해 정확히 알고 판단하는 것이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점일 것이다.
3. 기사제목: 존엄사와 관련하여
이 영상에서는 2009년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왔다. 존엄사, 무의미한 치료 중단, 안락사.......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견해.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치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한다. 이에 관한 논쟁은 여기 저기서 계속 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이 행복한 죽음이 되기를 바란다. 병원에서 독한 약물에 의지하면서 하루 하루를 버티는 것보다 자신이 원할 때 편안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죽음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생명 연장 장치에 의존해 살고 있는 말기 중환자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다. 힘들고 고달픈 것도 인생의 한 부분임이 확실하고 인간의 삶이 즐겁고 행복한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나 현대의학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불치병으로 사망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살아 있다고 한들 지독한 아픔에만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 일 뿐이고 그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누릴 수 없다. 스스로 의사결정이나 감정표현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의미하고 그러한 삶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생명을 고귀하다고 말하면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것은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자들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병일수록 필요한 치료가 많아지고 그에 따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난다.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을수록 그만큼 병원비가 매우 늘어나고, 병원비 때문에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며, 결국은 그의 가족들 사이의 불화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환자뿐만이 아니며 가족들마저 경제적 고통에 힘들어한다. 헛된 가망이나 극히 적은 확률에 의존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는 환자에게 막대한 의료비를 지출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는 아닐까?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겠지만 어쩌면 생산 없는 일에 투자하는 일과 비슷한 격일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알고 있을 때나 알지 못했을 때나 그 슬픔의 크기는 똑같겠지만, 죽음을 알고 대비했을 때, 가족들의 경제적 고통의 크기는 좀 더 작아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존엄사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환자와 의사가 더 이상의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을 때, 적당한 선에서의 치료를 끝내고, 삶을 정리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