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그 소리 없는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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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그 소리 없는 살인
디지털 미디어 산업의 빠른 발달로 인터넷이 없으면 생활하기가 불편해진 지금, 그것으로 인한 많은 불 필요 한 사건 사고 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 가장 고약하고 사람들 정신 건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최근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많이 되고 있는 악플 이것에 관한 소논문을 쓰려 한다.
한 포털 사이트의 대중문화 사전에 따르면 악플은 악(惡)’과 영어의 ‘reply’가 합쳐진 말로, ‘악의적인 댓글’즉 고의적인 악의가 드러나는 비방성 댓글을 가리킨다. 악플을 통해 ‘∼라 카더라’식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는 자극적인 내용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개방적인 공간인 인터넷을 통하여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악플의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 넘는다.
사람들은 대중(大衆)이 중요한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대중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모르는 현상인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쉽고 간편한 인터넷 안에서 댓글, 리플을 통하여‘아무도 나를 모르니까 어떻게 쓰던 상관없겠지’또는‘오늘 나 너무 기분이 안 좋은데 그냥 화풀이 해볼까? 라며 마구 잡이로 상대방에 대한 생각과 배려 없이 댓글을 쓴다. 물론 사회 적으로도 불안정하고 미래에 불안감이나 더 나아가 우울증으로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악플을 달겠지만 무책임한 인터넷언론들도 한 목 더해 아무렇지 않게 한 사람의 인생이나 이야기들을 농담이나 유머와 같은 가십거리로 치부해 우스갯거리처럼 기사를 작성 하여 당사자에게 상처를 주고 악플과 같은 영향을 주는 것 뿐 만 아니라 악플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여 악플러들의 양성에 원인과 악플이 등장할 수 밖 에 없었던 계기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악플러들이 많아지고 악플의 도가 점점 심해지면서 그것으로 인해 가장 고통 받는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대중에 노출 빈도도 높고 그 만큼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악플의 횟수가 많고 강도도 높다.
2007년 1월 가수 유니가 2년 만의 3집 컴백을 앞두고 자살을 선택했다. 유니는 이혜련 이라는 이름으로 10대 시절부터 왕성한 활동을 벌여온 하이틴 스타 출신 가수이다. 16세이던 1996년 영화‘본투킬’로 데뷔해 눈빛에 섹시한 카리스마를 듬뿍 지닌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고 2003년 유니 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가’‘콜콜콜’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이렇게 섹시 아이콘 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지면서 일본 진출도 하고 당시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도 춤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인기를 얻어 가고 있을 때 였다. 나도 한참 이때 당시 내가 유니의 콜콜콜과 가 라는 노래에 흠뻑 빠져서 엄청 좋아했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는데‘성형수술을 뭐 저 따위로 했느냐 코가 아주 마이클 잭슨이다.’‘술집 여자냐 속옷이 아주 다 보여서 완전 남자 꼬시러 나왔냐’‘가슴에 무엇을 넣었길래 저렇게 빵빵하고 크냐 병원을 알려 달라’‘에로 배우냐? 티비 나오지 마라 보기 싫다’등등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아픈 악플이 많아지면서 무대에서는 늘 밝고 대담한 모습을 자랑해온 사람이라도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악플로 끝내 자살을 선택할 수 밖 에 없었던 그 당시 갑작스런 그녀의 자살은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던 사건 이였고 이 사건의 주요 악플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안타까워했었던 사건 이였다. 곧이어 2월에도 배우 정다빈 본명 정혜선이 자살을 선택해 충격을 주었는데 정다빈은 동국대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2000년 영화 은행나무 침대2 -단적 비 연수에서 최진실의 아역인 어린 비 역으로 출연, 리틀 최진실이란 별명을 얻으며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 배우로 자기 자신의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통통 튀는 연기력과 해맑은 이미지로 호평 받은 그 당시 신세대 프로그램 이였던 MBC TV 시트콤 논스톱 2와 논스톱 3 시리즈. 이후 MBC TV 드라마 삼총사와 옥탑방 고양이에 출연하며 재목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3년 방송된 옥탑방 고양이에선 주관이 뚜렷한 굳은 심지의 소유자인 남정은 역을 맡아 남자 주인공 이경민(김래원)과 당당하게 동거를 선택하는 당찬 신세대로 등장해 당시 엄청나게 파격적인 스포트라이트와 인기를 이끌어 그 때 그 여자주인공의 모습이라던가 말투가 유행 했었는데 그 이슈를 타고 그녀는 2002년 MBC 방송연예대상 시트콤 부분 최우수상과 2003년 MBC 연기대상 신인상, 2004년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을 수상했고 또 2004년 개봉한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를 통해 스크린에도 진출하였기 때문에 이 배우가 끝까지 인기가 계속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연예계 생활은 풍파가 심했던 지 2005년 전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를 당하고 당시 SBS TV 그 여름의 태풍을 촬영 중이던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1년 넘게 공백기를 가지며 함께 했던 매니저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 등 급성 신우염 진단을 받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암 투병도 그녀의 힘든 점에 속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더 활동이 뜸해 졌던 시기에 성형수술이라는 의혹과 성상납이라는 여배우의 치명적인 루머로 인해 악플이 많이 생기면서 그에 따른 우울증으로 견디기 힘들어 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사건 이였고 많은 유명한 연예인들이 장례식에 나와 안타까워했고 이 배우는 자살 이후에도 타살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붙어서 경찰 조사까지 대대로 TV에 방영되어 악플이 더 심하게 붙어 주위 사람들 까지 힘들어 한 사건 이였다. 그리고 2007년 12월 가수 나훈아가 동료 연예인 아내와의 불륜 설, 남의 아내를 탐내서 그 가정을 파토 내버렸다는 루머 또 야쿠자 폭행 설, 일본 야쿠자 애인 연예인 K씨 (김혜수와 김선아)을 나훈아가 관심을 표해 그 남자친구인 일본 야쿠자가 몸에 상해를 입혀 입원했었다는 루머로 그 외 건강악화설, 중병설 등 갖가지 괴 소문에 시달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인터넷 상에서 사실처럼 기사화가 되어서 온갖 악플에 시달려 기자회견을 통해 대대적으로 루머를 해명하는 방송 까지 하는 사건도 있었다.
2008년 10월 국민 여배우 최진실의 자살로 연예계는 가장 큰 충격에 빠지고 마는데 그 때 당시 배우 안재환의 자살과 많은 의혹들의 조사로 떠들 썩 했던 시기도 채 끝나지 않았을 때 사건이 터져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국민들도 같이 마음을 아파했던 사건 이였다.
여 배우 최진실은 MBC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1988년)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로 데뷔하게 되었는데 20여 년 동안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140여 편의 광고, 20여 편의 TV 드라마, 18편의 영화 등에서 주연 배우로서 셀 수없이 많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출연한 여러 작품들의 성공으로 인해 최진실 신드롬 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으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고 연기력 또한 인정받아 청춘스타에서 일약 국민배우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무슨 작품을 하던 무슨 일을 하던 항상 사람들 시선에 주목 받을 수 밖 에 없는 스타였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 기억도 하지 못할 때의 나이에 나온 프로그램도 배우 최진실이 잘 살려서 그런지 몇 년이 지난 드라마지만 너무 재미있게 봐서 최진실이 나온 드라마라면 보장수표처럼 인기가 많았던 배우라 자살 이란 극단적인 선택에 많이 안타까웠었는데 이 자살의 핵심 적인 이유도 악플에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매니저의 살해에 대한 사건에 휘말린 것과 야구 조성민 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한 끝내 파경, 아이 양육문제로 합의이혼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우울증으로 충동적인 자살을 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2008년 9월 8일, 코미디언 정선희의 남편인 배우 안재환이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후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안재환의 사인은 자살로 밝혀지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쓸데없는 몇몇 악플러들이 "최진실이 안재환을 대상으로 사채업을 했대, 그러니까 최진실이 안재환의 채권자라는데?" 라는 거짓 소문으로 뜬금없이 모든 화살이 최진실로 향해버린 이 이유에서부터 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최진실은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어느 정도의 루머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안재환 씨의 유가족과 친구 정선희도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처음에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며 친구를 감싸주기를 먼저 하였고 2008년 9월 22일, 사이버 테러 대응센터에 이 사건을 의뢰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28일, 루머의 유포자 증권사 직원 백 모 씨(여·25세)가 경찰에 출두해 피의자 진술을 하였고, 최진실은 그 날 저녁 백 모 씨로부터 사과의 말이 아닌 선처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여기서 최진실은 백 모 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알아낸 점과 당당하게 선처를 요구하는 태도에서 심한 두려움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된 백 모 씨의 일방적인 전화에 대해 최진실은 친구인 퀸의 김재우 기자에게 악마의 전화라고 표현하며 그만 끝내기를 원했지만 혹시나 백 모 씨가 최초 유포자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전화를 계속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2008년 9월 29일, 서울 서초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백 모 씨를 입건했다. 그리고 다음 날 2008년 9월 30일, 최진실은“사채설 유포자가 잡혔으니 이제는 사람들이 내 진실을 믿어줄 줄 알았어. 그런데 토론 게시판에서 내 이야기에 서로 찬반양론을 펼치는데, 아직도 내가 안재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덕 사채업자로 그대로 묵인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나 너무 떨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아. 죽으면 내 진실을 믿어줄까. 내 이름은 ‘최진실’인데, 사람들은 나를 ‘최가식’이라고 부르네.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니? 환희, 준희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보단 죽어서 진실이 밝혀진 어머니가 낫지 않을까.”라며 그 말을 끝으로 2008년 10월 2일 자살을 선택하였고 이 앞의 말들은 최진실 자기 자신이 직접 퀸 김재우 기자에게 말을 했고 이 모든 말은 기자가 메스컴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아무튼 경찰 조사 결과, 허위사실유포의 근원지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인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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