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

 1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1
 2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2
 3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3
 4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4
 5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5
 6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6
 7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7
 8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8
 9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9
 10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10
 11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11
 12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12
 13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1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근대문학사] 이인직 `혈의 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일청전쟁
2. 사회진화론, 독립자강
3. 다양한 목소리 수용
5. 옥련, 유학
6. 개화문명
7. 신문, 기차, 편지
8. 입헌군주제
9. 자유결혼과 여성교육


본문내용


이인직은 일찍 부모와 양부모를 여의었고, 그의 증조 면채는 사관의 적자가 아닌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후손인 이인직 역시 가문으로부터 서출이라는 이유로 외면과 멸시를 당하게 된다. 이처럼 이인직의 가계는 권세 있는 양반 가문도 아니고 하층계급도 아닌 중간적 계층이었기 때문에 청년 이인직은 한편으로는 자기가 갈 수 없는 권력의 세계를 선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세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최종순, 『이인직 소설연구』, 국학자료원, 2005. 참조.
『혈의 누』를 분석하는 자리에서 김윤식도 이인직의 그 친일적 태도에 대하여 “그는 40세까지도 벼슬을 하지 못한 미미한 계층 출신이며, 따라서 구 정치인에 대한 증오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거니와, 일본을 청국보다 일층 높이 평가한 것도 사정은 같다. 즉 계층적 뿌리가 약해 권력층에 설 수 없었던 그는 일본과 청국 중 어느 쪽이 실력이 있느냐, 어느 쪽에 기댐에 현실적인가를 편견 없이 자유로운 처지에서 바라볼 수 있었음”을 지적하고, 청일전쟁의 통역관 출신으로서 당시의 현실적 상황을 민첩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그가 당시 한국적 현실을 “가장 실리적인 측면에서 파악한 탓”으로 보았다. 김윤식, 「개화기 소설의 문제점」, 『한국현대소설사연구』, 민음사, 1984, 34 쪽.

1900년 2월, 서얼 후손 이인직은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많은 관비 유학생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났는데, 5-6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던 것은 세력 없는 서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고 같은 해 9월 동경정치학교에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만 2년 10개월 만에 졸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