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단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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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 단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변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평양의 선조는 선인왕검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백성이 남아있으니 당당한 사공이 그 분이시네. 평양의 군자는 삼한 전부터 있으면서 수명이 천년을 넘고 장수하여 신선이 되었도다.”
이것은 1325년에 쓰여진 조연수묘지의 말미에 있는 글귀이다. 삼국유사, 제왕운기의 단군왕검은 천년 넘게 살다 아사달에 가서 죽었다고 하므로 이 글귀의 선인왕검을 단군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묘지명은 단군이 평양의 조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 시대에는 단군이 평양지역의 수호신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13세기 이전, 고려중기까지 사람들은 한국사의 시작이 기자조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고려사 문종9년(1055) 7월조에 실려있는 거란에 보낸 국서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는 기자지국을 계승했다’ 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또한 민족의 시조도 단군이 아닌 기자로 적고 있다.
하지만 일연의 삼국유사로 인해 이런 인식이 바뀌게 된다. 삼국유사는 대몽항쟁기에 쓰여진 책이다. 당시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몽고에 대항해야 했으므로 ‘우리는 원래 하나, 한민족이다’ 라는 역사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일연은 삼국유사에 한국사는 고조선에서 시작되며 고조선의 시조는 단군왕검이라고 썼다. 이처럼 한국사의 출발점을 단군으로 보는 시각은 삼국유사가 쓰여진 13세기 말에 처음 등장했다.
하고 싶은 말
단군 왕검에 대한 역사적 인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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