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윤리-콩쯔의 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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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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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 孔子(콩쯔)

(一) 콩쯔의 일생

(二) 콩쯔의 학술사상

(1) 콩쯔의 천도(天道)사상(우주론)

(2) 콩쯔의 윤리사상

(3) 콩쯔의 정치사상

(4) 콩쯔의 교육사상

(5) 중국문화에 대한 콩쯔의 공헌

본문내용
(一) 콩쯔의 일생
콩쯔의 이름은 치우(丘)이고 자는 쭝니(仲尼)이며, 노(魯) 양공(襄公) 이십이년(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노 애공(哀公) 십육년(기원전 479년)에 죽었다. 콩쯔의 조상은 송(宋)나라 귀족이었다. 송나라는 은(殷)나라 사람들의 후예들이 건립한 나라이므로 송나라는 비교적 풍부한 은대의 문화유산과 풍속제도를 보존하고 있었다. 콩쯔의 증조부는 난을 피하여 노나라에 이르렀으며,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콩쯔의 부친은 숙량흘(叔梁紇)이고 노나라 추읍(鄹邑) 대부였으므로 콩쯔는 노나라 사람으로 취급된다. 노나라는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의 봉국으로 제후국 가운데서 노나라는 주왕실의 예전의 전장문물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었다. 콩쯔는 은(殷)․주(周) 이대(二代)의 문화유산을 겸수하여 그의 사상학설도 자연히 그 둘을 계승하게 되었다. 콩쯔는 또한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로써 우리는 콩쯔가 주대의 문화를 비교적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콩쯔는 사(士) 계층의 출신이며 고대 귀족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집안이 중간에 몰락하여 (콩쯔가 일찍이 “吾少也賤”이라 말함), 매우 높은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콩쯔의 학술사상은 양면성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귀족이 남긴 전장제도를 보호하려 하므로, 귀족의 보수의식을 버릴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정치적으로 정명(正名) 및 주례(周禮)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콩쯔는 하층귀족에 속하였으므로 일반백성들에게 비교적 잘 접근할 수 있어 윤리 및 교육 방면에서 기꺼이 하층민중의 이익을 위하여 힘쓰면서, 사람들은 모두 덕을 닦으면 군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교육에 있어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有敎無類)라고 강조하여, 오로지 교육을 통해서만이 사람들이 선행으로 옮기고 악행을 떠나게 할 수 있어 아름다운 인격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콩쯔는 일찍이 노나라 사구(司寇)라는 직책을 맡았었다. 매우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또한 매우 정치적 치적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孔子年五十六, 由大司寇攝行相事, ……與聞國政三月, 粥羔豚者弗飾賈, 男女行者別於塗, 途不拾遺, 四方之客至于邑者不求有司, 皆予之以歸.” 이것으로 콩쯔는 나라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