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

 1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1
 2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2
 3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3
 4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4
 5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5
 6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6
 7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7
 8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8
 9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9
 10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1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불교의 윤리사상과 행복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윤리와 불교윤리의 정의
Ⅱ 불교윤리의 기초 - [1] 선(善) ․ 악(惡)의 기준
[2] 마음의 중시
선(善) ․ 악(惡)의 기준
- 인과응보 사상
마음의 중시
- 3가지 업
Ⅱ - 1 초기불교윤리 - [1] 이성적 특성
[2] 중도적 특성
[3] 실천적 특성



Ⅱ - 2 초기불교의 생활윤리 - [1] 가정윤리 ․ 부부간의 윤리
․ 부모와 자녀간의 윤리
[2] 사회윤리
[3] 경제윤리
Ⅲ 불교윤리사상 - [1] 연기설(緣起說)
[2] 사성제(四聖諦) ․ 고성제
․ 집성제
․ 멸성제
․ 도성제 - 팔정도
[3] 삼법인설(三法印說)
Ⅲ - 1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윤리사상 - [1] 소승불교
[2] 대승불교
Ⅳ 불교윤리를 통한 인간의 행복 발견
본문내용

Ⅰ 윤리와 불교윤리의 정의

▒ 윤리학이란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의 문제이다.
이 물음은 삶의 궁극적인 가치가 무엇이며, 그 가치가 무엇이라고 결정되었을 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물음의 뜻을 명확하게 하고 그 물음에 체계적인 대답을 시도할 때 윤리학이 성립된다.

▒ 불교윤리학이란 ?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했을 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佛敎)가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함은 당연하다.


Ⅱ 불교윤리의 기초 - [1] 선(善) ․ 악(惡)의 기준
[2] 마음의 중시
- 불교 윤리의 기본적 입장을 잘 표현해 주는 말로 이른바 칠불통계(七佛通戒)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되,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여기서 첫 번과 두 번째 구절은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止惡修善)’는 뜻으로, 이것은 어떠한 형태의 윤리나 도덕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교훈이다. 그런데 선을 하고 악을 하지 말라는 것은 ‘좋은 일을 하면 즐거운 과보가 오고 나쁜 일을 하면 괴로운 과보가 온다(善因樂果 惡因苦果)’는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렇게 악을 폐하고 선을 권하기 위해서도 선과 악은 즐거움과 괴로움만큼이나 확연하게 구분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일반적인 윤리는 선과 악의 분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윤리학에서 논하는 선은 악과의 관계에서 악과 대립된 선, 즉 일종의 상대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인 악에 대해서, 선은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인데, 이렇게 부귀영화나 무병장수라는 미래의 즐거운 과보를 약속함으로써, 세간의 상대적인 선은 인간에게 집착심을 유발시킨다. 결국 선과 악의 상대적인 분별의 근저에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번뇌심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의 선을 유루선(有漏善)이라고 부른다.
선과 악의 분별이 집착과 번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상,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한다고 해서, 생로병사로 인한 근원적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 상태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착과 번뇌를 낳을 뿐인 이원적인 분별심 그 자체를 가라앉혀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이 세 번째 구절의 내용이다. 윤리적으로 선과 악을 논하기에 앞서, ‘선과 악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원래 상태(善惡未分前本來面目)’로 되돌아가, 상대적인 의미에서 선과 악에 매달려 머리를 아프게 하지 말고(不思善 不思惡), 오히려 보다 넓은 차원에서 선도 악도 넘어서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과 악을 초월하여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선(勝義善)이며, 선과 악의 상대적 분별과 대립[對]이 끊어진[絶] 절대적인 선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탐욕(貪)과 분노(瞋)와 무지(痴)로 인해 끝없이 새어나오는(漏) 번뇌가 마침내 차단되기 때문에, 그것을 일러 무루선(無漏善)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선악 이전의, 선악의 경계선 너머의 본원적 절대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일반적 윤리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적 종교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선악을 초월한다고 해서, 선악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선악 이전의 청정심의 자리로 돌아가, 그 자리를 윤리와 선악의 원천으로 삼음으로써,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저절로 세간의 윤리 규범에 상즉(相卽)하여 전혀 잘못됨이 없는 상태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점이야말로 선악 초월의 자유(自由)와 선악 즉응(卽應)의 자재(自在)가 만나는 곳이며, 세속선과 승의선, 상대적 선과 절대적 선, 세간적 선과 출세간적 선, 유루선과 무루선이 융통하는 접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처음의 두 구절과 세 번째 구절을 결합하여, 네 번째 구절에서 그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말로 회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회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출세간은 세간에서의 도피나 은둔이 아니라, 세간 속에서의 출세간화이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