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중세사] 황소의 대란-당후기 모순의 집중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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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중세사] 황소의 대란-당후기 모순의 집중적 표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강적(江賊)-차와 소금 밀매자들
무장한 도적과 주민의 협력
소농민의 저항 움직임
연이은 흉작과 도둑으로 변신한 농민
왕선지, 황소의 봉기-대반란의 발발
격심한 유동-반란집단의 남하
북으로 돌아가서 장안을 점거하다
황소 제위에 오르다
반란세력의 구조
반란세력의 붕괴-대반란의 끝
황소에 얽힌 전설
대반란의 의미
번진의 재편과 당왕조의 멸망-동아시아세계의 변모
지방정권으로 전락한 당왕조
무인(武人) 사이의 주종관계
활발한 가부자적 결합
당왕조와 단절로써 대응하다
번진 간의 항쟁과 통합
본문내용
황소의 대란-당후기 모순의 집중적 표현

강적(江賊)-차와 소금 밀매자들
1) 방훈의 반란이 끝난 다음 해, 남은 자들은 현재 산동성 남부, 하남성 동북부에서 거주하며 도둑떼가 된다. 이들의 활동범위에서 왕선지, 황소가 봉기하였으므로, 이 도둑떼의 활동이 대반란의 온상이 되었다 할 수 있다.(그러나 황소의 대반란이 최대규모의 반란임을 생각하면, 여러 원인 가운데 작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2) 강적은 주로 양자강 연안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지주와 상인층이 초시(草市)를 좌지우지하였는데, 강적은 이들을 습격한 것이다.
3) 당왕조는 차를 과세대상으로 하고, 소금전매제를 실시하자, 차와 소금을 밀매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강적 또한 차와 소금을 밀매하는 무리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장한 도적과 주민의 협력
1) 강적은 무장집단으로서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강적에게 협력하고 있었다. 강적의 보호를 받으며 운반을 담당한 주민들은 무장부락을 형성하였고, 도적이 되기도 했다. (이런 부락은 관헌이 쉽게 발을 디딜 수 없다. 일종의 ‘해방구’가 생기지 않았을까?)
2) 이는 당왕조의 토대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움직임이 후반기 체제 모순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

소농민의 저항 움직임
1) 9세기 60,70년대에부터 소농민의 저항움직임이 일어났다. 자사를 쫓아내는 것이 대표적 양상이다.(교재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