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권근의 유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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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도전, 권근의 유불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유불 논쟁의 배경

○고려말 조선초 불교의 폐단과 성리학자의 입장
고려왕조는 건국이념이라 할 수 있는 태조의 훈요십조에서 보듯이 불교의 우위성을 확인한 이래 적극적인 불교진흥책을 지속시켜 왔다. 그리하여 고려 시대에 불교는 유례없는 번영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불교의 과도한 성장은 고려 말기로 오면서 점차 그 부작용을 드러내게 된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내적으로는 독창성을 잃고 사상적 심화를 이루지 못했으며 선종과 교종간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외적으로는 현실권력에 밀착함으로써 계율의 실천을 통한 사회 윤리의 규범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민간 신앙과 습합하여 주로 개인적 안심입명이나 기복을 위한 세속 신앙으로 전락하였다.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 권력과의 밀착을 통해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여 각종의 사회적 폐단을 초래하였다. 구체적으로 사전(寺田)의 비대화는 국가의 토지 제도를 문란케 하였으며, 과다한 불교 행사는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켰다. 또한 승려와 사노(寺奴)의 과다는 인력 자원의 고갈을 초래하였으며, 더군다나 승려의 타락은 세인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불교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에 대해 적대적인 대립 관계를 설정하고 적극적으로 불교를 비판한 것은 고려 말에 시작되었다. 그 주된 요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고려 말 불교 타락이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고려 말에 들어서면 불교는 사상적 측면에서 고려 사회를 지도하는 이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폐단을 초래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성리학의 수용이다. 성리학은 적극적인 도통 관념에 의한 벽이단(闢異端)의식에 정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교의 이론에 정면으로 맞설 만큼 이론적 무장을 갖춘 가장 체계적인 유학의 이론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본격적인 유불논쟁은 성리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유학자들의 배불론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상, 고익진, 열음사, 1984
포은과 삼봉의 철학사상, 정성식, 심산, 2003
강좌 한국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예문서원, 1995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예문서원, 1995
한국철학사상사, 한국철학사연구회, 심산출판사, 2003
한국철학사, 한국철학회, 동명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