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조선전기 한문학의 전개 한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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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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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전기 한문학의 전개
-한시를 중심으로-
목 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관인문학
(1) 관인문학과 훈구파
(2) 정도전
(3) 권 근
(4) 서거정
(5) 성 현
2. 사림문학
(1) 사림출현과 그 한계
(2) 김종직
(3) 정여창
(4) 이 황
(5) 이 이
3. 방외인문학
(1) 방외인문학과 역사현실
(2) 김시습
(3) 도피와 반발의 자취
(4) 미천한 처지에서 겪는 고통
(5) 삼당시인과 임제
(6) 여성 한문학의 등장
Ⅲ. 결 론
※ 참고문헌 및 부록
조선전기 한문학의 전개
-한시를 중심으로-
Ⅰ. 서 론
조선조의 건국과 더불어 가장 큰 변화라면 무엇보다 국시로서 고려의 불교가 이씨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신흥문학인 성리학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해 조선조는 〈척불숭유〉의 정책을 실시하면서 성리학을 건국의 이념, 국시로 삼고 봉건 왕국의 제반 문물제도를 재 정비, 확립하였다. 성리학이 국시로 되고 또한 나라의 문학적기반이 되면서 그 것은 문학에도 큰 영향을 주어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리학의 문학관은 한마디로 글은 도를 싣는 것으로 이것을 〈재도설 (載道說)〉이라 간칭 하였다. 좀더 풀어 말하면 문은 도를 싣는 그릇이며 도학을 근본으로 삼고 도에 뜻을 둠으로써 교화의 구실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전반기는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조선전반기 한문학, 한시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점이라면 그것이 사대부적 문학이었다는 것이다. 옛글에 〈독서왈사 종정왈대부 (讀書曰士 從政曰大夫)〉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즉 사대부란 독서인, 관료라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주로 벼슬에서 떨어진, 또는 벼슬길로 나아간 관리 중심의 유교적 지식계급을 두고 사대부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 같은 사대부들이었지만 그들의 사회적 처지와 생활자세는 서로 달랐다. 사대부적 문학 역시 그 담당자들인 사대부들의 부동한 사회적 차지와 생활적 자세에 따라 그 성격도 서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 전반기 역사현실과 관련시켜 이 시기 사대부적 문학을 우리는 관인문학, 사림문학, 방외인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 전반기 한시 문학은 다름 아닌 이 세 가지 사대부 문학에 의해 주도되었다.
II. 본 론
1. 관인문학
(1) 관인문학과 훈구파
조선전반기 사대부는 역시 두 세력으로 나뉘었는데 그 하나는 훈구파라 하였고 다른 하나는 사림파라고 하였다. 훈구파는 개국공신이나 개국 후의 공신 또는 그 후예로서 중앙정계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권력과 토지를 차지한 채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력으로 형성되었고 사림파는 당시 지방의 중소지주의 위치에서 그것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중앙 정계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세력으로 형성된 일파였다. 관인문학과 사림문학을 구별해서 다를 수 있는데 그 둘은 사회적인 성격이나 사상적인 기반에서 차이가 있고, 문학을 하는 기풍 그 자체로서 대립적인 양상을 드러냈다. 관인문학은 문학의 장식적인 기능을 중요시하고 격식에 맞게 잘 다듬어진 표현을 추구했다. 한문학이야말로 지위나 능력을 입증하는데 독점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보고 그 본령 특히 한시의 수준을 높이는 게 힘을 기울였다. 사림문학은 자기 성찰을 하는 사상이나 흥취를 소중하게 여기고, 시조나 가사창작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관인문학은 바로 상기한 관료적 문인 또는 훈구파들로 이루어진 문학을 두고 말한다. 관인 문학의 창작경향을 보면 주로 자신들의 생활체험과 인식을 노래한 외에 조선조의 건국을 찬송하는 송축문학과 도학문학에 많이 이바지함과 동시에 조선전기 문화 창조와 이념적 기초 확립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관인 문학의 대표하는 작가호서는 정도전, 권근, 서거정, 성현, 신숙주 등을 들 수 있다.
(2) 정도전
정도전( ? - 1398)은 어머니쪽의 신분이 천하였던 관계로 처음에는 벼슬길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 한때는 비천한 몸으로 권력을 탐내며 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비난도 들었고 또 우왕때는 전라도 먼 시골인 소재동이란 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조의 건국에 앞장섰던 개국공신으로서 성리학을 숭상하는데 공로가 컸고 상기한바와 같이 조선 건국초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건국의 이념적 기초를 확보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재도(載道), 교화(敎化)의 문학관의 소유자로서 문필과 시에도 능하였다. 후에 정도전은 방석(芳碩)을 끼고 일하며 방원(芳遠)에게 반항하다 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저서로서는 최영과 공저한 〈고려사〉와〈사봉집〉,〈조선건국전〉,〈학자지남도〉등이 있으며 한시와 함께 적지 않은 국어시가 작품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