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영화의이해] 영화 타인의 삶을 통해 바라 본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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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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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 타인의 삶 > 에 나타난 시대적 배경; ‘독일의 문화정책’

- 영화 속에 비추어진 슈타지의 예술가 감시

● 동독- 건국에서 통일까지의 연보

● 실제 독일에서 행해진 슈타지와 문화정책 ; ‘ 문화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다 ’

- 문화 정책 관련 슈타지 기구

● 브레히트의 희곡

- 타인의 삶과 < 사천의 신인 >

● 집단적 기억의 문제

※참고 문헌


본문내용
- 영화 속에 비추어진 슈타지 동독의 국가 공안국 (독일어: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약자 MfS)은 슈타지 (독일어: Stasi, 국가공안을 뜻하는 Staatssicherheit에서 유래)로 흔히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국가공안국(STASI)을 국가공안보위(독일어: Staatssicherheitsdienst)의 약자로 칭하기도 하였다. 국가공안국은 동독의 비밀 경찰과 첩보 기관이었다. 국가 공안국 본부는 동베를린에 있었으며, 리히텐부르크의 확장 조직을 비롯한 여러 소규모 조직들이 도시 전체에 깔려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이 첩보기관은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 공안국의 모토는 "당의 방패와 검 (독일어: Schild und Schwert der Partei)"이었는데, 이는 이 기관이 소련의 공산당에 해당하는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과 연계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의 예술가 감시

슈타지 요원이 영화의 비슬러처럼 자신의 업무를 속이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나타낸다. 실제로 게르트 트레베야르와 베르너 테스케 1981. 6. 26 국가안전보위부 상임요원 베르너 테스케(Werner Teske) 대위가 공화국 탈출 예비음모를 했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는 업무 태만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슈타지 책임자인 에리히 밀케 에리히 밀케는 1957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슈타지 총책임자로 일했다.
는 배신자와 서독으로 탈출한 요원들을 가혹하게 처벌했다. 통사당 통일 사회당. 정식 명칭은 독일사회주의통일당(Sozialistis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SED)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회주의 정당의 총결집이라는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동독지역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통합하여 1946년 4월 창당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데올로기 강제와 소련 당국의 압력에 의해 수년 후에는 사실상 사회민주당적 색채는 일소되었다. 당의 최고결정기관은 당대회이나 실질적인 권한은 중앙위원회에 집중되었다. 특히 1954∼1971년 제1서기의 지위에 있었던 W.울브리히트는 독재적 지도를 해 왔을 뿐만 아니라, 1973년 당 서기장에 선출된 E.호네커는 1976년 10월 국가원수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차지함으로써 권력을 독점하였다. 1990년 7월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합하여 독일연방공화국이 성립된 후, 12월 총선거에서 민주사회주의당으로 개칭하여 16석을 차지하였다.
의 노선에 반대한 슈타지 요원으로 또 하나의 사례는 베르너 슈틸러 1979년 1월, 살을 에는 듯한 추운 어느 겨울 저녁, 동독 국가안전부(MFS·슈타지) 소속 베르너 슈틸러 중위는 슈타지 본부의 극비 서류를 가방에 담아 들고 동독에서 도망쳤다. 서독 정보당국은 슈틸러 중위의 귀순을 계기로 처음으로 서독 경제 및 과학, 연구 분야에 대한 동독 정보기관들의 첩보활동 규모를 상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슈틸러 중위가 제공한 자료와 동독 국가안전부(슈타지)의 활동내용에 관한 그의 정보지식 덕분으로 서독 정보당국은 주로 서독 核연구 분야에서 암약해 온 17명의 프락치들을 체포하게 되었다.
인데, 그는 체포 위기에서 서독으로 탈출했다. 위험의 진원지를 사전에 알아내어 감쪽 같이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은 1970, 1980년대 동독의 문화계를 규정하고 있었다. 문학이 동독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유로운 공간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유럽안보협력회의 최종 결의안이 체결된 후 드라이만과 같은 작가는 슈타지의 중점 감시 대상이었다. 1969년 예술가 감시는 슈타지의 HA XX/7부서에서 행해졌다. 국제적인 인정이나 유엔 가입에 대한 세계 정치 무대에서 동독이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형벌 이외에도 세분화되고 심리적으로 교활한 방법이 억압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의심 받는 사람들 주변에 프락치 정당이 대중단체 속에 설치한 당원조직. 넓게는 밀정, 첩자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이에 의하여 정당은 당의 방침을 대중단체 내에 침투시키고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대중단체의 결정과 당의 방침이 상충될 경우 당원 프락치는 대중단체의 결정을 지키도록 지도된다

들이 활동하였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크리스타 마리아의 예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물질적 혹은 정치적 이유에서 슈타지를 위해 프락치로 일했다.
한편 이 영화는 슈타지 요원을 묘사함에 있어,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맹목의 당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된 조직원이며, 동독의 미래를 확신하는 철저한 사회주의자로 설정된 인물, 비즐러는 그러나 가족도 친지도 없는 사고무친의 외롭기 짝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보편적 인물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슈타지라는 국가권력기관이 제도적으로 저지른 범죄인데, 특수한 인물설정은 범죄의 근원이 제도와 함께 인물의 특수한 성격이나 상황에도 있는 것으로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즐러가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며, 집에서는 휼륭한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하는 사람일 때, 슈타지의 범죄는 더 선명하게 제도에서 오는 것임을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창우 (2008) “영화로 보는 독일 문화” 신아사
최정은 (2008) “독일 영화와 독일 문화” 연세대학교 출판부
성경숙 (2007) “독일영화의 새로운 가능성,(향수)와(타인의 삶) 영화진흥위원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