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

 1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
 2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2
 3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3
 4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4
 5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5
 6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6
 7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7
 8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8
 9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9
 10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0
 11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1
 12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2
 13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3
 14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4
 15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5
 16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6
 17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7
 18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8
 19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19
 20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2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국문학개론] 국문학 희곡의 변화 양상-희곡의 국문학적 특징을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Ⅰ 서론

1) 전통극과 희곡

2) 전통극의 기원

3) 삼국시대의 전통극

4) 고려 · 조선시대의 전통극

5) 근대 전환기 이후의 극

Ⅱ 본론

1) 삼국시대 처용무

2) 조선시대 처용무

3) 시대별 희곡의 양상 비교

4) 조선시대의 탈춤

5) 참고자료 - 중국의 전통극

Ⅲ 결론

Ⅳ 토론 주제

본문내용
2.2.2. 『악학궤범 홀기』의 처용무
12월 그믐 하루 전날 오경 초에 악사, 여기, 악공 등이 대궐에 나간다. 이날 나례 때 악사가 여기와 악공을 거느리고 음악을 연주한다.
무릇 구나가 끝난 후에 처용무를 두 번 추는데 처음에는 학과 연화대의 회무 등이 없고 악사가 청, 홍, 황, 흑, 백의 오방처용 및 여기를 인도한다. 여기는 처용가를 노래한다.

2.2.3. 학연화대처용무합설
이 춤은『악학궤범(樂學軌範)』에 홀기(笏記)가 한 가지씩 따로따로 기록되어 있어서 독립된 춤이 분명하고 지금도 그대로 추고 있다. 그런데 학·연화대·처용무 합설(鶴·蓮花臺·處容舞 合設)은 『악학궤범(樂學軌範)』 권5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이것은 궁중(宮中)에서 매년 12월 그믐날이면 지내는 나례(儺禮)에서 차례에 따라 학무, 연화대, 처용무가 출연한 것이다. 여기서는 나례(儺禮)의 진행과 행사 내용에 있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학무, 연화대, 처용무가 별도로 합동해서 춘 대목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전원이 회무할 때 함께 참석하고 한 장소, 한 자리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했기 때문에 합설이란 제목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2.2.4. 오방 처용무
『용재총화』에 따르면, 현재로 전승된 오방처용무의 재정비는 세종조에 이루어졌고, 세조조에 더욱 그 구성을 성대하게 편성했다고 한다.
조선의 나례 행사는 매년 섣달 그믐날(12월 29일)마다 창경궁과 창덕궁에서 동시에 연행된 연례행사가 되었다.
처용무는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한사람이 추던 것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중국의 음양오행설에 영향을 받아 ‘오방처용五方處容’이라 하여 5명이 추는 것으로 변화했다. 즉 동, 서, 남, 북, 그리고 중앙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남쪽에 적색, 동에는 청색, 북에는 흑색, 서쪽에 백색, 중앙에는 황색 옷을 입고 춤을 춘다. 5명 모두 처용의 가면을 쓰고 있다.

2.3 성격 및 특징
▮ 처용무의 총괄적인 성격
처용무는 나쁜 액을 막고 경사를 맞이하는 한민족의 종교적인 혹은 무속적인 춤의 하나로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천하였으나 거기에는 호방한 남성의 움직임과 함께 오락적이고 익살적인 성향이 내포되어 있는 탈춤 무용극의 일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등장
- 조선의 처용무는 세종조 25년 정월의 조항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세종조 25년 처용무에서는 여기(女伎)를 제외하고 남자를 기용하였다고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