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

 1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1
 2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2
 3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3
 4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4
 5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5
 6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6
 7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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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의 언론통제] 일제 시대의 언론통제의 원인과 특징 및 문제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일제 강점기 언론사 시대구분

2. 민족지 부재의 시대(1910∼1919)의 언론통제
가) 국·내외 정세와 신문통일정책
나) 총독부 기관지들(매일신보와 경성일보와 The Seoul Times)

3. 민족지 출현-굴절의 시대(1919∼1940)의 언론통제
가) 3.1운동과 그의 영향
나) 민족지와 사회주의 잡지의 등장
다) 언론통제 검열기구 경무국과 일제의 언론정책

4. 민족지의 소멸시대(1940∼1945)의 언론통제
가) 태평양전쟁과 민족지 말살 계획

5. 일제의 언론통제의 원칙과 문제점
가) 동화주의(同化主義)와 현실 통치상의 모순
나) 일제 언론정책·선전의 불합리와 모순

6. 맺음말 : 일제의 對韓 언론정책·선전 실패의 근본적 이유

본문내용
1. 일제 강점기 언론사 시대구분

일련의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시대구분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같은 시간 때의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어떤 주제로 연구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시대구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대구분은 연속적인 시간을 편의(연구와 이해의 용이성)에 따라 임의로 구분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라는 시·공간 속에서 일어났던 언론현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통용되는 시대구분은 다시 한 번 고찰해보고, ‘언론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시대구분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대구분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등가성의 문제 ▲기점의 문제 ▲성격규정의 문제가 그것이다. 등가성의 문제의 경우, 일정한 시기를 분절의 기점으로 정한다면, 그 기점을 전후로 한 전기와 후기가 질적으로 등가를 유지했을 경우 충족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등가성의 문제를 적용할 경우, 1920년을 기점으로 일제강점기의 초반부를 분절하는 방식에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즉, 1920년을 기준으로 하는 시대구분 방식이 1919년의 3·1운동의 민족사적 또는 언론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뜻밖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31년을 중심으로 1920년부터 1940년간의 시기를 나누는 구분 또한, 3.1운동과 1931년의 의미를 등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기점의 문제를 적용할 경우에도, 1920년 기점의 시대구분에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 시대구분의 기점은 질적 차이를 일으킨 역사적 사실 또는 계기를 중시하여 정해야 한다. 1920년 이후 민족지가 재등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1919년의 3·1운동 때문이라 할 수 있기에, 그 기점은 마땅히 1919년으로 해야 한다. 또한 1920년 시대구분은 1919년 3월 1일 이후 활발히 발행되어 민족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른바 ‘지하신문’ 형태의 허가받지 않는 민족지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게 된다.
성격규정의 문제에 있어서는 1920년대의 언론현상은 토착 언론자본의 본질적인 양면성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계속 설명하겠지만, 일제 또한 조선 강점 후 그들에게 아부 굴종하는 토착 동맹세력이 필요로 하였고, 문화정치라는 이름 아래 탄생된 와 또한 일제의 본질적 체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범위 아래에서 유용한 선전자, 대변자로 복무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기의 성격규정에 있어서 지나치고 협소한 민족주의로, 혹은 총독부 권력과 언론의 갈등관계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1910년부터 1919년을 ‘민족지가 없던 시대’, 1919년에서 1940년까지를 ‘민족지의 출현과 굴절’로, 1940년 이후는 ‘민족지 소멸시대’로 규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 김민환, 박용규, 김문종, (서울:나남, 2008)
· 김규환, (서울:이우, 1980)
· 정진석,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 김민환, (서울:나남 2005)
· 정진석, (LG상남언론재단, 1998)
· http://www.pcuniversity.co.kr/an_html/dab_02/dab_02_1293_2.htm
· HJM's residency-general, recent progress in korea, seoul, 1909, p2.
· 최민지, (일월서각)
하고 싶은 말
과제물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제 자료가 구입자분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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