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잡가 연구 - 특징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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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십이잡가 연구 - 특징과 의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십이잡가 연구

Ⅰ. 서론
Ⅱ. 잡가의 형성과 십이잡가
Ⅲ. 십이잡가의 내용 분석
Ⅳ. 십이잡가의 갈래적 특징
Ⅴ. 십이잡가의 문화적 의의
Ⅵ. 결론
Ⅰ. 서론
雜歌는 음악의 명칭으로, 민속악으로서 잡다한 소리란 뜻으로, 가곡가사시조 등 正樂과 대비된다. 직업적인 소리패가 부르며 공연했으며, 소리패의 지체가 한 등급 낮아 가사와 구분된다. 가사는 4음보 연속체, 또는 4음보 위주로 연속되거나 음보격과 음수율에 변화가 있는 형태다. 잡가는 입타령이나 반복구가 있는 분연체이며, 가사보다 서정적인 면이 강하고 그 형식이 민요와 유사하다. [김문기, 『서민가사 연구』, 형설출판사,1999, 47쪽]
가창가사와 함께 가사의 변형에 속하면서, 가사를 해체하면서 등장한 독자적인 갈래이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2005, 399쪽
그 중 ‘긴잡가’·‘坐唱’이라고도 불리는 십이잡가는 경기도에서 생기고 전승되었다. 원래 「유산가」·「적벽가」·「제비가[子歌]」·「소춘향가」·「선유가」·「집장가」·「형장가」·「평양가」 八雜歌였는데, 正歌인 십이가사에 준하기 위하여 나중에 雜雜歌인 「달거리[月令歌]」·「십장가」·「방물가」·「출인가」 네 곡을 더해 열두 곡으로 만들었다. 김문기, 『韓國古典詩歌原典』, 태학사, 2001, 496쪽
본고에서는 잡가의 형성 배경을 통해 십이잡가의 형성을 살펴보고, 서민 의식을 중심으로 십이잡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십이잡가라는 갈래가 가지는 특징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십이잡가가 문화적인 면에서 가지는 의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잡가의 형성과 십이 잡가
잡가의 등장은 17·18세기에 상업 도시의 발달과 함께 여항·시정 문화의 발전과 관계가 있다. 새롭게 성립된 시정 문화는 상층의 진지함·우아함과 하층의 소박함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면서, 고급 문화와 하층의 민속 문화가 섞이는 양상이 나타난다. 시정 문화가 난숙해지면서, 아악과 속악 문화의 변질된 모습이 잡가가 아닌 것을 잡가로 인식하는 사례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하층의 민속음악에 해당하는 판소리나 타령을 잡가로 지칭하고, 상층의 고급 음악이자 정가에 해당하는 시조와 가사를 잡가로 지칭하기에 이르는데, 이는 시정 문화의 공간에서 그러한 음악이 연행되는 것과 관련한다.
양반들 사이에서 연행되던 시조나 가사가 시정에서 연행되면서, 상층의 고급 음악 일부가 시정 문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기 레퍼토리로 채택되어 변질된다. 하층의 민속 음악 일부 역시 시정 문화에서 향유되면서 그 본래 모습이 변질된다.
시정 문화는 시정인들의 기호나 취향에 영향을 받는 통속성을 띠며, 도시의 대중을 상대로 했으므로 양반·중인·평민을 망라했다. 시정인들은 새로운 자극을 원했는데, 이 때문에 당시 음악 문화는 기존의 악곡이나 사설들을 고수하기보다 새롭게 변주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당시 음악 문화를 주도했던 전문가객이나 그들의 후원자로서 좌상객인 사대부들이 상층의 고급 문화를 시정의 음악으로 변화시켜 그 레퍼토리를 다양화했다. 가곡창을 여러 형태로 변주하고, 시조창과 가사창이 시정에서 새로이 부상했다. 김학성, 「잡가의 사설 특성에 나타난 구비성과 기록성」, 『國文學의 口碑性과 記錄性』, 태학사, 1999, 314-319쪽
18세기 하층의 시정 문화는 떠돌이 예인 집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농민층의 분화가 진행되는 때에, 농민의 이농 현상으로 떠돌이가 된 농민들과, 전통 연행 집행 기관이었던 산대도감이 폐지되면서 길거리로 나온 궁중의 예술인들이 광대패가 된다. 이들은 사찰과 관련을 맺으면서 떠돌이 예인 집단인 사당패·걸립패·중매구패가 되어, 상업이 발달한 지역을 돌면서 잡가 등을 부른다. 잡가가 도시의 유흥 공간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로, 이 때 잡가꾼이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소리패가 등장한다. 도시가 발달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시정 문화가 발달하고, 그 속에서 잡가의 가창문화권이 확대된다. 김학성, 위의 글, 319쪽
18세기의 잡가의 개념은 현전하는 문헌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대부층의 저술에 나타난 雜著·雜詠·雜記 등의 용어를 봤을 때 사대부들의 문헌에 나타난 잡저·잡영 등과 같은 잡문은 형식을 특정할 수 없으면서 내용은 雅正하지 않은 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