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프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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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프로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전개되었던 프로문학운동은 근본적으로 31운동 이후 일제 강점의 시대적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난 민족운동의 확산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것은 일정한 사회의식의 문학내적 수용이라는 의미에서 우리 근대문학사의 독특한 산물이다. 즉, 민족사적 특수성 아래 사회주의 이념을 그 사상적 기초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족저항 운동의 형태로 구체적 실천을 보였다는 점에서 우리 근대문학의 독자적 성격을 형성하는 하나의 준거가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프로문학의 영역 내에서 시 장르 속 프로시사는 곧 프로문학사의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런 관점에서 프로시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이 근대문학사 서술 과정으로부터 배태되었음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프로시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프로시’란 곧 프롤레타리아 계급 기초 위에 서 있는 시문학의 경향 전체를 지칭한다. 이것은 당대 식민지 민족운동의 방향성이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부르조아 계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던 것, 즉 프롤레타리아적인 이념 지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역사적 조건 아래 형성된 것이 프로문학인 것과 관련된다.
신경향파 시가를 거치고 난 뒤의 한국 프로시는 서정시의 약식과 결별하고, 서술시의 개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목적의식기에 이르러 나타난 이 새로운 프로시의 약식은 아지프로를 목적으로 하는 개념적 서술시, 혹은 교술시라고 명명할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명칭은 정보전달의 기능은 갖되 추상에서 구체로의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개념적 또는 교술적 내용의 거시가 그 시적 태도로 자리 잡은 것임을 의미한다. 아지프로를 목적으로 한 이 도구성의 시문학은 현식의 반영이 아닌 이데올로기 및 정치적 과제의 반영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예술적 진실의 차원에서는 멀어졌던 것이라 미리 밝혀둠이 좋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양식은 시 자체의 가능성으로 당대 현실에 대응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 결과이었던 바, 그 점의 의의를 인정하는 데에는 조금도 인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경향파의 시가 막혀버린 단계에서 고려할 만큼의 풍부한 문학유산도 없었던 상황 하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전대의 서정시가로부터 극단 쪽으로 빠져 나오는 길이기 십상이었던 점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카프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들 사이에서는 볼세비키화기의 기본원칙인 ‘당의문학’과 ‘전위의 눈으로 세계를 볼 것’이라는 문제가 가장 중심적인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볼세비키화기의 프로시는 추상적 관념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무순된 삶과 강요된 굴종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본가와 싸워나가는 계급투쟁의식의 고취가 상당히 현실적인 삶 속에 토대를 두고 쓰이고 있다. 비록 선전선동을 목적으로 쓴 시들이라 할지라도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목적의식기에 쓰인 관념적인 프로시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선정선동의 가장 극단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시 형식으로는 낭독시―슈프레히콜―로 쟁의 현장 속에서 직접적으로 투쟁을 고양하는 목적을 지닌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주요한 작가로는 권환, 임화, 안막, 박세영, 백철, 이찬, 김창수, 김해강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시를 제재, 내용별로 살펴보면 첫째 프롤레타리아의 생활과 계급투쟁을 다룬 시, 둘째 노동쟁의와 소작쟁의를 다룬 시, 셋째 선진적인 전위 운동가의 활동과 생활을 다룬 시 마지막으로 소부르조아들과 타락한 조합간부를 비판한 시로 범주화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생활과 계급투쟁의식을 형상화한 시들은 같은 마르크스주의를 세계관으로 받아들인 목적의식기의 프로시들과는 달리 무산계급의 투쟁의식을 관념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을 매개하여 작품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볼세비키화기에 접어들면서 프로시가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는 점은 이 범주에 드는 작품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930년 이후 소위 창작의 고정화 현상으로서 ‘뼉다귀시’에 대한 프로시 내부의 반성과 아울러 임화 류의 ‘단편서사시’의 프로시로서 양식적 위상에 대한 평가가 모호해진다. 단편서사시는 비교적 선명한 서사적 골격을 지닌 일종의 이야기식으로 아울러 극적 태도를 지닌 배역시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존의 서정시로는 급변해 가는 서사적 현실의 복잡성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양식적 자각 또한 정서적 감염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술적인 형태로 일정한 의식을 강요하는 아지 프로의 서술시의 경우도 그것을 가지고 미급한 인식수준을 일반 독자로부터 대중성을 확보해 나가기에는 상당한 난점이 뒤따른다는 인식 등이 작용 그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 이른 바 단편서사시이다. 그러나 이 단편서사시가 직접적으로 부각되기 시작된 것은 바로 김팔봉의 대중화론에 의해서였다. 종래의 목적의식론이 예술운동 및 예술을 대중으로부터 유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예술의 대중화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팔봉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김팔봉의 예술 대중화론이 창작방법론의 자리에서 논의된 변증적 사실주의까지 포함하여 거의 수준 미달의 것이었음을 이미 잘 알려진 것이고 다만 창작방법론을 문제 삼을 경우 시를 논의하는 일은 드물거나 거의 없는 것이 프로문학의 일반적 현상이었음을 고려할 때 김팔봉이 여기서 예외적 존재였음은 지적할 만하다. 즉, 그는 한편으로는 대중소설론을 전개하면서 다른 일면으로는 프로시가의 대중화와 단편서사시를 써나갔던 것이다. 먼저 전자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이 글은 자신의 대중소설론과 똑같은 발상법 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하지만 꼭 같은 내용이나 발상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소설에 경우와 시가에 적용되는 경우와 그 장르적 성격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뭇 다른 양상을 띨 수도 있는 바 이 사실은 우리의 시의 양식문제에 대하여 라는 부제를 한 단편서사시의 길로가 잘 말해주고 있다하겠다. 그는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를 세밀히 분석하면서 이것이야말로 프로시가 나아갈 단편서사시로 하고 이 양식은 프로시가의 참된 모습이자 동시에 대중화의 길이고도 하였다는 것을 논증하고자 하였으니 김팔봉에 의해 임화의 단편서사시가 부각되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임화란 존재가 없이는 김팔봉의 시가 대중화론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단편서사시의 전개에 있어 임화라는 존재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1930년대 프로시는 1920년대 신경향파시의 민중적 시각을 계승하면서 그 나름의 변모를 꾀한다. 특히 임화는 새롭게 역사와 시대의 주체로 등장한 노동자, 농민들의 정서를, 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시적 세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후 많은 아류들을 형성했던 이러한 시적 경향은 「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어머니」, 「양말속의 편지」, 「우산 받는 요꼬하마 부두」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는 김기진의 예술대중화론과 맞물려 그에 의해 단편 서사시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사건과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시에 적극 도입하려는 노력으로, 즉 서사적인 구조를 실험하는 방식으로 단편 서사시가 실현된다. 임화의 이런 시적 경향은 박세영, 이찬 권환, 백철 등의 시에서도 꾸준히 계승되고 있으며, 특히 1930년대 초기에 새롭게 시작 활동에 나서는 신진 시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카프 해산 이후에도 이런 경향은 민중적 삶에 기반한 제 경향의 추구로 꾸준히 이어졌고, 비교적 신진으로 대체되면서 내용 우위에 서서 기교가 정당하게 지양되는 모습을 뚜렷하게 민족의 열망 형상화로 나아갔다. 일제의 수탈이 강화될수록 민족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민족과 민중의 열망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는 이런 시의 정신은 프로 문학의 시 정신을 발전시킨 것이며, 일제 말의 암흑기를 밝혀 준 이육사, 윤동주의 시 세계에서도 이런 단면은 일정하게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는 프로시에서 전형성이나 객관성의 리얼리즘적 요건을 논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즉 시에 이야기 내지 사건 및 직접적 등장인물을 도입함으로써 현실을 구체적,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그 속에서 전형적인 상황을 그려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이처럼 시에 서사양식이 도입된 사실 자체는 전달을 목적으로 한 문학적 진술의 기능적 측면에서건, 민중적 양식의 확보 혹은 회복이라는 양식사적 측면에서건 리얼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양식적 탐구라는 이야기인정된다. 도입함보다 중요한 것은 시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때, 단지 서사구조를 택해서만 그 목적에서뉴성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진술이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라는 이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에서 보이는 과도한 감상성의 노출은 외견상 시적 화자의 주관적 성격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로, 그 시적독자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를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 객관적 현실의 인식이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의 객관적 반영을 이루어낸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시에서 객관성과 전형성의 문제는 시적 진술 주체가 드러내는 주관적 목소리를 통해서만이 제시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시의 리얼리즘시로서의 특징을 단순한 서사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가 아닌, 다양한 시적 화자를 통한 담론구조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리얼리즘시의 양식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매우 의의 있는 접근이다. 실상 그가 1920년대 초기 시단 형성과정의 문단적 분위기나 여성 편향성 및 낭만적 열정을 1920년대 후반 프로문학의 사회적역사적 응전력과 결합시켜 낭만적 프로시를 개성적으로 개척한 것은 특유의 기민한 상황포착능력과 대응능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된다. 그의 시가, 그 예술적 성숙도는 논외로 하더라도, 초기시단의 문단적 예술 지향적 분위기를 프로시 속에 이끌어 들여 낭만성향의 프로시로서 한 전형성을 이루어 낸 점을 과소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소월한용운 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