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현실비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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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현실비판의 철학
인간에게 있어서 탐욕(貪慾)이란 생리적인 욕구 다음으로 가장 우선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일례로 이제껏 인류사에 남은 거의 모든 전쟁은 인간의 탐욕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탐욕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먹잇감에 대한 동물들의 탐욕도 대단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행동으로 생각 할 수 있다. 보통의 육식 동물들은 그들이 배가 고프지 않는 한 사냥을 하지 않고 초식동물들도 그들이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이를 먹는것을 그만 둔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게 대입되면 그 양상은 조금 달라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어쩌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성(理性)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 후부터 탐욕이란 존재는 인간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건 지도 모른다. 이성의 사전적 의미는 도리에 따라 행동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지금껏 인류는 이성대로 행동하고 판단한 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 동물과 달리 이성이 생김으로 인해 이성에 반(反)하는 사고도 가지게 된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파리스가 헬레네를 갖고자 하는 탐욕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이다. 이것은 어쩌면 지금에 와서는 아름다운 로맨스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러한 견해는 단시 이상적인 스토리일 뿐이다. 한 개인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려졌고, 그것은 절대 용서될 수 없는 행동이다. 이것은 단지 사적인 탐욕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만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영웅으로 칭송받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개인의 야망에 더해져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벌어진 전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야망이라는 허울좋은 단어에 가려진 알렉산더의 탐욕이 크게 작용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학적으로, 인간이 수렵과 채집의 활동에서 벗어나 농사를 짓고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재산을 가지게 되고 그로인해 서로간의 전쟁이 발생하였다고 말하여 진다. 다른사람의 식량과 재산을 자기것으로 하기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더욱더 축적하기 위하여 타인(他人)을 죽이는 일까지 불사(不辭)하게 된것이다. 어찌보면 탐욕이란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보다 가지고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파리스나 알렉산더는 헬레네나 동방이 아니어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위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이러한 것에서 본다면 인간이 이성적으로 탐욕에 얽매이지 않은 올바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무소유(無所有)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파르타쿠스는 노예의 신분으로 오로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노예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예들과 힘을 합쳐 로마에 대항하지만 점점 그들 사이에는 묘한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자유를 가지지 못했을 땐 자유 그 자체에 대해 갈망 하였지만 자유를 얻고 난 후에는 자유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나은 자유, 다시 말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자유를 위해 내부 분열한다. 영화상으로는 스파르타쿠스가 그들의 리더가 된 것을 원치 않은 일부의 무리가 떨어져 나와 자신들이 원하는 자유를 위해 떠나가지만 그들은 결국 로마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 장면은 어찌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나에게는 좀 더 나은 자유라는 탐욕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몰살당한 가련한 인간군상으로 비춰졌다.
인간의 탐욕이 낳는 비극은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거창한 사건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래와 안개의 집’은 제목에서부터 탐욕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주인공들의 집을 둘러싼 일련의 행동들을 탐욕이 아닌 그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 역시 탐욕이라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 베라니는 캐시의 집을 주거용이 아닌 투기목적으로 매입하여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실현하려 했고 결국 마지막에 베라니는 가족들을 전부 잃어 버리고 자신도 자살하게 된다. 캐시는 살아남지만 상기해야 할 것은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느 것이냐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물질, 그것의 존재의 취약성에 주목하고 싶다. 모래는 파도에 쉽게 쓸려가 버리고 안개는 해가 뜨면 걷혀버리는 약한 것들이다. 인간은 물질을 위해 탐욕을 부리지만 그 물질이 천년만년 가지 않는 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래성과 같이 애써 지어놓으면 파도에 쓸려가 버리고, 안개와 같이 밖에서 보면 거대하고 환상적인 것이지만 정작 그 안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다. 그 취약한 것을 갈구하던 베라니는 죽었고 결국 남은자는 캐시이다.
가가시리는 그 물질의 취약성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극단적 예이다. 여기서 인간은 그 탐욕을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에게 까지 눈을 돌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영양을 무참히 도륙하는 인간에게서 더 이상 이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쓰리킹즈는 그 표현 방식이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가가시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쓰리킹즈에 나온 주인공들은 어찌보면 가가시리에서의 영양사냥꾼들보다 더욱 더 물질에 집착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 가면서 황금에 대한 탐욕을 보이고 그 과정에서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어차피 그것이 영화이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독이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 무겁지 않은 방식을 썼을 뿐이지 만약 그러한 일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취약한 물질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