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岸曙) 김억 -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

 1  안서(岸曙) 김억 -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1
 2  안서(岸曙) 김억 -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2
 3  안서(岸曙) 김억 -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3
 4  안서(岸曙) 김억 -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안서(岸曙) 김억 -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안서(岸曙) 김억
Ⅰ. 생애
안서 김억(1896~?)은 평북 정주 출생으로 한국 근대시의 서장을 연 개척자로 평가된다. 그는 일본 유학시기인 1914년에 일본 동경에서 발행되는 『학지광』 창간호에 , 을 발표하였고 제5호에 , ,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안서의 문단활동은 1918년 『태서문예신보』 1918년 9월 창간되어 1919년 2월 통권 16호로 종간되었다. 초기에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고 문예작품 외에도 취미 기사를 실었으나 곧 문예지로 전환하였다. 주로 시·소설·수필·시론·번역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김억·이일·장두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구 문예의 도입과 소개에 주력하였다.
를 중심으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번역과 소개 및 창작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 후로 『창조』,『폐허』,『영대』,『개벽』,『조선문단』,『동아일보』,『조선일보』등에 창작시와 번역시, 평론, 수필 등 다방면에 걸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안서의 활동은 크게 서구 문학의 소개라는 측면과 창작시의 세계. 에스페란토어의 보급 등이라고 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김소월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문단활동 중에서 특히 서구문학, 즉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와 시론, 뚜르게네프와 타고르의 번역, 소개는 당대 한국 근대시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김억에 대한 연구나 평가는 주로 이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김억은 번역시집 11권 외에도 창작시집 7권, 120편 이상의 평론을 발표한 왕성한 생산력을 가진 시인이었다. 정귀임, 「김억의 시와 시론연구」, 동아대학교, 2006.
Ⅱ. 시적 형식과 리듬의 인식
김억이 『태서문예신보』에 발표한 초기 시들은 최남선의 작품에 비해 안정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시적 서정성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시적 표현에 있어서 정서의 문제에 대한 자각을 분명하게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으며, 시적 형식과 시적 운율에 대한 배려를 무엇보다도 우선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근대시의 본질적인 속성에 해당하기도 한다.
김억이 보여준 시적 탐구 작업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시적 형식과 리듬에 대한 자각이다. 김억은 시에 있어서 그 형식과 리듬을 보다 새롭게 변형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일본 유학 과정에서 체득한 서구 근대시의 형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적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의 초기 시들은 시조와 가사와 같은 고정적인 형식의 잔재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가 즐겨 쓰던 방식대로, 시상의 전개 과정에 따라 두 개의 행을 합쳐 하나의 연으로 구성하는 방법이라든지, 각 연의 마지막 음절에 유사한 음성적 자질을 지닌 음절을 배열하여 압운법의 효과를 노린 것 등은 시적 형식과 리듬에 대한 관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밤이도다.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