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구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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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구자황, ‘독본(讀本)’을 통해 본 근대적 텍스트의 형성과 변화 요약정리 및 비판적 읽기
1. 문제제기-독본이라는 이름의 제도
문학은 사회적 행위이자 집단적, 제도적, 사회적 산물이다. 문학을 하나의 생산물로 정초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여러 사회집단 및 제도들이 문학적 기득권을 선취하고자 투쟁하는 하나의 장으로서의 사회적 공간을 전제해야 한다. 문학장 내에서의 질서유지와 변혁은 작품의 가치생산, 유통, 수용, 재생산 전반에 나타나며, 이러한 과정 중에 교육제도가 포함되고 주요 매체로 교과서가 주목받게 된다. 근대형성기에 교과서의 형태로 등장한 텍스트가 바로 ‘독본(讀本)’인데, 독본이란 근대적 학제의 도입과 재편의 필요성으로 등장하게 된 공식적 교과용 도서이다.
교과서는 크게 제도적 의미와 표준적 의미를 갖는다. 제도적 의미는 교과서가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기간개념이라는 것과 제도적 아이디어와 그 결정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말한다. 한편 표준적 의미는 교과서가 대국민 교화수단이라는 것과 일정한 담론형성의 통로를 열어주는 표준적 지식매체로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독본은 처음부터 교과서로 인정받은 경우이지만, 때로는 비공식적인 교재로 출판유통되기도 했다. 특히 민간차원의 독본류는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근대적 어문교육을 실현하면서 근대담론을 재편해 나가고 근대적 의미의 문학적 혹은 장르적 규범을 형성해나갔다. 실제 1910년 후반에는 조선어 중심의 독본이 영향력이 높은 편이었고, 최남선의 『時文讀本』(1918), 이태준의 『文章講話』(1939)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결국 문학교과서는 근대담론으로서의 문학(관), 글쓰기 이데올로기와 기술적 규범, 나아가 장르에 대한 의식과 규범까지도 드러내주는 주목할 만한 대상이라 하겠다.
이처럼 독본류가 주목되는 이유는 첫째, 표준적 지식체계를 배타적으로 정립하고 재생산구조를 확보하는 제도이자 매체였다는 것과 둘째, 독본은 사실상 제도적-비제도적, 관(官)-민(民), 일제-조선의 ‘근대지(智)’가 충돌하는 양상을 띤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독본에 관심을 두고 분석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근대 담론의 형성과정과 ‘문학의 정전화(正典化)’과정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탈식민의 계기까지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교과서 밖의 교과서로서 독본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 혹은 그 경향과 재생산 구조의 과정이 어떠한지를 살펴볼 수 있다면 근대형성기 문학 장(場)의 형성과 변화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 구한말 독본의 형성기반
조선정부는 1876년 국교를 확대한 뒤 교육개혁을 본격적으로 모색하였다. 갑오개혁은 전통적 유교이념을 계승하고 서구의 실용지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고종이 조칙으로 발표한 ‘교육조서(敎育詔書)’에서 좀 더 구체화되었다. 또한 근대형성기의 교육개혁은 근대식 학교의 설치, 새로운 교과서 편찬 등으로 진행되어 나갔다. 1894년 소학교와 사범학교의 설립방침이 발표되고, 이듬해는 ‘소학교령’과 ‘한성사범학교’ 규칙을 공포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개혁의 가장 큰 문제는 대중적 열망과 급속한 파급력을 제도적으로 수용재편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상 조선의 교육개혁은 일본의 ‘교육에 관한 칙어’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최초의 근대교과서 『國民小學讀本』이다. 이는 근대적 학제의 제정과 공포, 이로부터 적극적 필요에 의해 개발된 교과서라 하겠다. 여기서 ‘소학(小學)’의 의미는 대학(大學)과는 상대적으로 ‘기초입문단계’를 의미한다. 개화입문서의 성격이 강했으며, 범교과적 지식이 총망라된 ‘근대지(智)의 입문서’인 셈이다. 이 책은 과거 교과개념이 분화되기 전과는 달리 ‘과(課)’와 ‘장(章)’으로 구성되었으며, 단원의 길이, 제재의 배열 등을 고려하여 내용적으로는 연속된 하나의 텍스트를 나눈 형식을 취한다. 또한 조악한 활자나 한장본(韓裝本)으로 된 제책방식을 띠고 있어 급조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일본의 교과서 체제를 거의 번역하다시피 했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대형성기 교과구분을 보더라도 국어만의 독자적인 교육내용이 구성된 상태가 아니었고, 다만 읽고 쓰는 활동을 익히는 기능교과로 독본이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재의 형식과 주제는 바뀌었지만, 교수-학습 방법상으로는 여전히 전통적 ‘독본식 교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國民小學讀本』은 최초의 교과서임과 동시에 근대 형성기 교과서의 전범을 마련한 의미가 있다. 특히 역사, 수신 교과서의 표본이 되었으며, 종합적 교양서의 성격을 지닌 교과서라 할 수 있다. 한편 『新訂尋常小學』은 1896년 학부가 새로 만든 국어교과서이다. 『國民小學讀本』은 국가, 역사 등 고차원적인 내용을 다뤘다면, 『新訂尋常小學』은 생활, 가정 사회를 중심으로 비교적 평이한 단원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新訂尋常小學』이 ‘尋常’이라는 일본식 학제의 반영을 뜻하는 표제를 따르고 있고, 편찬위원이 일본인이었음을 감안 할 때 이 교과서를 순전히 텍스트의 진전된 면으로만 평가하기는 힘들다. 독본의 편제를 재조정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지만, 『新訂尋常小學』은 일본의 교육지배가 교과서를 통해 관여개입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 책 모두 ‘근대지(智)의 초기 독본화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제도적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자가 근대지를 광범위하게 보급하면서 혼종적 의미와 ‘국민(國民)’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내려는 근대적 텍스트의 의미가 강했다면, 후자는 편집주체에서부터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심상(尋常)’이라는 키워드로 하향평준화를 도모함으로써 향후 일본의 교육지배정책을 예견할 수 있게 한다.
3. 독본의 분화와 근대담론의 재편과정
1) 근대지(智)를 둘러싼 독본의 충돌
학부의 의욕적인 교과서 편찬 사업은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으로 잠시 주춤하는데, 이는 계몽 담론의 일시적 공백기와 관련있다. 독립신문의 폐간 이후부터 근대적 개념들의 주된 통로였던 출판 매체들이 현저히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06년 이후 근대적 담론이 재점화되면서 독본으로 대표되는 교과서적이 폭발적인 증가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때 주목할 것은 독본의 분화이다. 독본은 특정 독자를 설정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범교과적, 범지식적 근대지(智)의 체계를 재편하면서 미미하게나마 장르의식이 나타났던 것이다. 또한 이에 발맞춰 일제의 교육지배정책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일제는 배일(排日)적인 교과서는 일소하고 학부 자체에서 편찬한 교과서를 보급하기 위해 주력했다. 또한 1911년에는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식민지교육에 대한 기본방침과 제도적 기반을 확고히 마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