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미완의 시대 줄거리 ★ 미완의 시대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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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독후감
1917년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그는 책에서 자신의 개인사와 역사, 그리고 그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나라와 도시들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는 여러 나라에 마음이 끌렸고 거기서 편하게 살았으며 그 밖에 많은 나라들을 조금씩 보았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까지 포함해서 어떤 나라에서도 자신이 살던 곳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쿠바 등 여러 나라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타지에서 온 이방인처럼 스스로의 인생에 아무런 뜻도 없다고 한다. 그는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심지어 나는 내가 접해본 나라들 안에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개인으로서는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는 반대하는 길을 걸었고 여러 언어에 능한 코스모폴리탄이었고 못 배운 사람들에겐 정치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쏟아 부었던 지식인 이었으며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듯 여러 나라들과의 만남은 그를 특별한 시각으로 마주하는 세상을 선물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달팠으나 역사가에게는 각별한 자산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사는 곳과 학교의 지역이 같은 곳이 아니었다. 요즘은 버스로 고작 30여분거리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길이 좋지 않은데다가 막히기까지 해서 2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그것은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이어져서 아직도 그렇지만. 사춘기에 만나온 여러 지역의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의 특성들이 있었고 조금의 문화는 달랐다. 그들의 틈새에 끼에 있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잃는 듯하여 두려워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관찰하는 습관과 상황에 맞는 성격과(비록 내성적인 성격이 바탕에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 하물며 여러 지역을 다님으로써 얻은 것들인데 그의 여러 나라들과의 인연은 역사가에게 정말이지 소중하지 않았을까. 한국은 단일민족이다.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에 유난한 집착이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다름‘에 편협한 사고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많은 나라에 가있다. 이제 우리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다른 문화를 경험해 보고 배우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인연이 있는 여러 나라들 중에서 프랑스에 대한 애착이 가장 남달랐는데 왜냐하면 사춘기 시절 루브르에서 마네의 ‘올랭피아’의 대담한 시선에 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 나를 프랑스로 개종시켜야 한다면 그 적임자는 바로 마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1991년 공산당이 해체될 때까지 공산당원으로 남았지만 막무가내식의 강경좌파에 일침을 가할 만큼 소명의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가 마약처럼 뿌리치기 어려웠던 이유는 사상이 워낙 총체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고 한다. 그는 당을 떠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당에 남는 이유는 그가 공산당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파시즘하고만 싸운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혁명을 위해 싸운다는 뜻이었지만 베를린에서 10대 소년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존심이기도 했기에 그곳에 남았다고 한다.
에릭 홉스봄은 재즈에도 심취해 에서 가짜 이름으로 재즈비평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마할리아 잭슨이나 베니 굿먼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첫사랑을 느낄만한 나이에 음악의 계시를 받아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재즈는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그 당시 재즈는 미국을 알 수 있는 통로였다. 그래서 재즈를 통해서 인권운동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민권 운동이 격화되고 유색인이 영국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면서 인종주의는 좌파 진영에서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는 화두로 떠올랐다고 한다. 1958년 노팅힐 인종 폭동이 벌어지고 나서 영국에서 벌어진 초창기 반인종주의 운동의 하나인 ‘인종 화합을 위한 스타 운동’에 재즈를 통해 관여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에 911에 한 이야기를 했는데, ‘위싱턴은 911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실제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미국은 세계 질서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누가 세계를 위협하는지도 자기 혼자서 정의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든지 잠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적으로 여겨졌다. 2002년 세계에는 어느 때보다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늙은 역사가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읽으면 젊은 역사가가 21c의 어두운 전망에 그에 합당한 비판주의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한 눈,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 감각, 현재의 열풍과 장사판에서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가지고 맞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했다. 911테러가 일어났을 당시에 나는 AUSTIN과 HOUSTON에서 지냈는데 길에 차들이 별로 없고 사람을 보기기 힘들었다. 물론 다시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려웠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에 친구들과 모여(거의 아시아인이기는 했지만) 놀다가 911테러 이야기가 나왔다.(평소 우리는 정치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911테러 이야기라 하기 보다는 부시에 대한 욕이 태반이었지만. 미국의 생각과 미국인의 생각은 항상 일치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세계 질서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다. 그리고 세계역사는 정말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할 것이다.
. 역사학자의 이야기라 그런지 자서전을 읽은 것인지 역사책을 읽은 것이지 헛갈리는 나. 어떻게 그렇게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존경스럽지만 너무나 방대한 양에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말았다. 이 책에서는 20c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에릭 홉스봄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지나간 모든 나라와 시대 그리고 사람들. 그에 대한 세세한 기록들은 어쩌면 나에게는 지루함을 주었다. 개인적인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건들과 함께 나열한 이 이야기들은 사회탐구와는 담을 쌓고 지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역사학적 지식, 또는 사상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세한 이해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관심이 없었던 20c의 역사를 알게 해주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흘러가는 것 같이 나열된 시대설명 보다는 큰 사건위주로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책이었기에 나에게는 성장한 면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각을 생각하게 되고 역사적인 배경을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담게 되었으니까.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나는 책으로 출판하지 않더라도 나의 인생을 한 번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찬성하면서 마지막으로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