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검은 고양이」에 대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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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검은 고양이」에 대한 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Edgar Allan Poe의 「검은 고양이」에 대한 감상문
짧지만 강렬했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무척 유명하기 때문에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 위에 검은 고양이가 올라가 앉아있는 삽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읽은 후에는 마음속으로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로테스크한 삽화였다.
1인칭 화자이기도 하고 주인공이기도 한 나는 얼핏 전형적인 싸이코패스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말하고 있는 걸 자세히 보면 행동을 하는 이유가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체에서 접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 싸이코패스와 나는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는 그냥, 무심코, 또는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가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알코올중독이 있다. 플루토의 행동에서 나를 피하는 것 같다는 불쾌감을 느꼈고, 악을 위해 악을 저지르고 싶다는 불가피한 욕구 때문에 플루토를 목매달아 죽였다. 나를 넘어지게 할 뻔한 고양이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죽이려고 한 순간 아내가 말리자, 방해를 받은 것에 또다시 격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아내를 죽였다. 살인으로 끝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살인으로 가게 된 이유는 굉장히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사실 이 모든 게 살인자 나의 입을 통해 언급되고 있으므로, 그것도 나가 모든 범죄가 끝난 후 사형을 앞두고 있는 처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온전히 믿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앞서 "솔직하고 간결하게, 잡다한 설명 없이" 말하고 싶다는 그의 말을 생각하면 온전한 거짓도 아니다.
의문이 드는 건, 살인을 저지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내의 사체를 숨기는 데까지 성공한 그가 어째서 스스로 자기에게 덫을 놓았냐는 것이다. 왜 그는 경찰들에게 벽돌 이야기를 했을까. 괜히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 그랬다는 그의 말이 이제까지와 달리 별로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이전까지는 어떤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으로서 그의 행동이 설명이 되었다면, 경찰들은 어떠한 액션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벽에 관해 떠들어대는 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목한 것들이 있다. 먼저, 인간 존재에 관한 그의 태도이다. 소설 초반에 나가 온순하고 동물을 좋아했던 자신의 본래 성품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그는 동물들의 충성적인 면모를 예찬하며 "단지 사람이라는 이름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존재"라는 말을 한다. 후에 술집에서 데려온 고양이의 몸에서 교수대의 윤곽을 한 반점을 보게 되면서 나는 그 고양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진 인간인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말한다. 짐승보다 인간을 비하하는 반면에, 인간을 하나님의 위치로 올리고 짐승에게 화를 내는 태도는 분명 어긋남을 보인다.
그 다음으로, 나와 아내 간의 관계에 눈이 갔다. 아내는 온순했던 나의 예전 성향과 일치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아내가 동물을 좋아하여 동물을 사들인 게 아니라, 나가 동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아내가 나를 위해 동물을 사온 것이었다. 아내는 나가 폭력을 행사해도 그저 참았다. 이렇게 보면 아내는 나에게 무지 순종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나를 많이 위하는 인물이다. 마치 나가 찬양했던 동물들의 "이기적이지 않고 희생적인 애정"을 그대로 실천하는 인물인 것 같다. 나는 아내를 제외한 타인에게서 "하찮은 우정이라든지 백지장 같은 신뢰를 자주 겪어본 사람"이라고 추측되어진다. 그런 나이기에 아내의 사랑에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가 술집에서 문제의 검은 고양이를 데려오자 아내는 고양이에게 "온갖 사랑을" 다 준다. 겉으로 묘사되어있진 않지만, 이때의 나는 그 고양이에게 심한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내가 나가 고양이를 죽이려고 할 때 막자 그 질투로 인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 아닐까? 나는 나가 아내를 살해하게 된 이유를 한번 이렇게 추측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검은 고양이」를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지 잠시 고민해보았다.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형식의 소설도 추리소설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이 소설을 추리소설로 봐야하는 걸까? 고민한 끝에, 나는 이 소설은 추리하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화자가 탐정도 아니고 형사도 아니지만 이 소설은 분명 추리를 하고 있었다. 우선 이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화자 나가 내일이면 죽을 시점에서, 자신의 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내 영혼의 짐을 내려주고 싶"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말이 나온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환상"을 "평범한 사실"로 간주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나는 환상이라는 말이 자꾸 걸렸다. 분명히 나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아내 사체 위의 고양이를 보았다. 이로 보아, 나가 아내의 사체를 벽에 가둘 때 고양이도 함께 가둬버린 것을 알 수 있다. 나가 술집에서 검은 고양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큰 술통 위에 앉아있던 그 고양이를 몇 분 동안이나 알아보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가 벽을 바를 때에도 고양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환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죽기 전까지도 이 일을 스스로 환상이라 믿는다. 나 자신에게는 불가해한 일에 대해 나가 화자가 되어 서술함으로써 스스로 이 일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풀어보려는 노력으로 이 소설이 쓰인 것 같다. 우리 독자들은 고양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아내 사체와 함께 가둔 거네.라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반면에, 그러지 못한 나는 사건을 돌아보면서 진실을 밝혀보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 소설은 독자의 추리소설이 아닌, 화자의 추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