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 - 영화 워낭소리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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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
-영화 워낭소리를 통해서
처음 영화 워낭소리를 봤을 때는 당연히 그냥 다큐멘터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다큐멘터리는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장르라는 편견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는 농촌에 사는 노부부와 그의 동반자인 마흔 살 소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개봉 6주 만에 모은 관객은 전국 136만 여명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새 역사를 쓰고 썼지만 어떤 일각에서는 가 정통 다큐에서 벗어났다며 연출 및 조작의 논란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워낭소리를 기억해보기로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워낭소리를 검색해보면 장르분류가 “다큐멘터리” 라고 기록 되어 있다. 다 큐멘터리 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 보았더니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이 없이 그 전개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린 것.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소설, 기록 따위가 있다.’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실제 상황이나 자연 현상을 사실 그대로 찍은 영화로서 전문배우를 쓰지 않으며 극적 요소도 배제하는 것이 다큐영화인 것이다. 그럼 전혀 반대라고 생각하는 “극영화”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찾아본 결과 ‘가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영화. 장편 극영화(feature film), 상업영화(commercial film) 등과 혼용되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극영화는 실제 장소에서 많은 촬영이 이루어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기록영화의 형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영화는 근본적으로 어떤 줄거리나 사건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기록영화와는 다른 제재와 기법을 사용하며 관객에게 보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자칫 잘못하면 워낭소리를 극영화 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극영화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기록영화의 형식을 사용하는 것 뿐이지 워낭소리는 말그래로 현실을 담으려고 했다.
이런 것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다른 비판이 나왔다. 워낭소리는 소재부터 표현방식에 이르기 까지 독립 다큐멘터리와는 그 형식이 다르고 극영화의 스토리텔링, 드라마타이즈, 리액션샷 등의 전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장르에서부터 독립 영화계와 대중들 일부가 ‘는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극영화 같은 다큐멘터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관객들 중에는 워낭소리를 보고 실제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알고 하는 소리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에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싶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은 지나치게 과도한 연출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런 장면이 당연한 거처럼 보였다. 그런 연출이 없었다면 영화가 더 담백해질 수는 있었을 거라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연출이 없었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볼 수 있었을까? 흥행에 성공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한참 지루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 같지 않다는 논란을 계속 되어 왔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금껏 내가 봐왔던 다큐멘터리와 비교하자면 워낭소리는 분명 내레이션도 없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짜임새’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또한 현장을 포착해 ‘고발’해왔던 다큐멘터리와 달리 현장을 ‘보여주고자’ 했다. 물론 이 보여주는 행위는 감독의 주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는 극영화의 성격을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작가는 카메라를 도구삼아 풍경이든 인물이든 ‘실재’하는 것을 담는다. 사진 속에 인물이 자연스럽게 찍혀도 결국에는 사진 속에서 자연적 연출임은 분명하다. 다큐멘터리 감독도 마찬가지 아닐까? 카메라의 기능을 조금 다를지라도 어쨌든 프레임에 현실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재단할 수 밖에서 없는 불가피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충렬 감독이 실재하지 않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프레임 속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모 평론가의 비평에서 오디오 편집의 문제를 지적한다. 오디오가 영상과 맞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이 부분은 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꼭 오디오와 영상이 맞아야 하는 게 아닌데도 왜 그렇게 좋은 가짜니, 다큐멘터리의 약속이니 들먹거리며 이야기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뉴스나 경제 프로그램 이나 드라마 같은 부류도 아닌데 이런 문제점을 걸고 넘어 지는 걸까? 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일반관객이 아니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워낭소리를 보면서 특별히 다큐멘터리에서 쓰여서는 안 될 편집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편집에 대해 잘 모르는 면이 많아 주제 넘는 발언일 수도 있다. 워낭소리에서 인물들의 대화와 영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묘한 속임수가 아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는 거다. 인물들이 애써 이상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오간 대사를 영상과 잘 편집해놓은 것일 뿐이다. 그건 감독 선택의 문제이다. 과도한 편집이 들어간 건 사실이다. 끊임없이 워낭소리가 울리는 것은 어느 땐 좀 과하다 싶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이야기의 진정성은 연출과 가공에 의해 빛을 잃거나 가려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큐에서는 의도된 연출이 불 필요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있는 그대로를 들어내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만약 워낭소리가 아무런 연출도 없는 다큐였다면 정말 재미없는 내용이 될 것이다. 아마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서는 ‘사실성과 진실성의 논란’이 계속될 것 같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담아야 하고 진실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가장 분명하게 적용됐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으로 사실성과 진실성을 정의하자면, 사실성은 객관적인 관점, 진실성은 주관적인 관점이 아닐까 한다. 즉, 사실성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특징, 사건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진실성은 주관적이면서도 설득력과 납득이 가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안의 ‘진정한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다. 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진실성으로 담아내려고 했으며 포스터의 영어 이름이 ‘Old partner인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처음부터 이충렬 감독은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우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가족”이라는 주제를 두고 휴먼다큐를 찍는다고 하자. 장소는 평범한 가정집이다. 그냥 인물 앞에 카메라를 가져다 놓고 돌리기만 하는 것이다. 아무 연출도 없이. 처음에는 전문 배우가 아니라면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고 어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 후에 100일 동안 카메라를 돌린다고 치자. 아무런 연출없이 말이다. 그렇게 해서 빛나는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을까? 아마 대답은 전혀 나올 수 없다 일 것이다. 물론 실생활에서 아버지의 부도와 동시에 남동생의 서울대 합격 이라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인생은 드라마 같다 라는 생각을 한 사람도 많을터. 하지만 카메라가 놓인 순간에 그런 상황이 올 수는 없다. 이미 연출된 상황이 되어야 다큐가 될 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아버지 회사의 부도와 남동생의 서울대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온 후에 다큐를 찍는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연출된 상황의 다큐는 안좋은 부작용을 안기도 한다. 동물다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사례인데 내일 죽일 지도 모르는 아픈 강아지가 있다고 치자. 그 강아지를 살리기 위해 병원으로 가 치료를 하는 등의 노력을 브라운 관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로 높은 시청률과 관심을 받기위해 살릴 수도 있었던 동물을 일부러 죽이기도 한다는 반발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제작진 측에서는 아니다 라며 해명했지만 뭔가 심증은 있고 물증이 없어 끝난 해프닝도 있었다.
사실상 다큐는 약간의 극영화를 입혀야 하는 게 당연하게 아닌 가 라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두 장르가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깊숙이 섞여 있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