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론 사랑의 울림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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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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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화 평론] 사랑의 울림 워낭소리
- 황혼기의 소와 인간이 벌이는 감동적 다큐
요즘 자극적이고 재미만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한 편의 독립 영화가 입소문만으로 2개월여 만에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 상영관을 넓혀가고 있다는 소식은 독립영화가 그 설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에 비하면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성공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처음 제작할 때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익숙해 지기를 기다리고 느리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할아버지와 소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데에도 인내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워낭소리’는 소의 행보처럼 우직하게 작업돼 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하지만 중간에 제작사가 제작을 포기했고, 완성이 다가올 무렵에는 방송국에서 조차 거절당했다. 난감해하던 이충렬 감독은 극장용으로 편집해보라는 주변지인들의 말에 극장 상영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그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그것도 다큐멘터리에게 스크린을 내어줄 극장은 많이 않았다.
처음 6개 스크린으로 시작하여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상영관을 늘려갔다. 평일 낮 시간이 매진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점차 개봉관을 늘려 쟁쟁한 상업영화들을 제치고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서 흥행한 것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외국인 영화관객들도 함께 할머니의 말 한 마디에 다 같이 웃고, 할아버지와 소의 마지막 모습에서는 다 같이 눈물을 훔쳤다. 비록 한국어 특유의 표현법을 영어로 충분히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감정이었다. 그리고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하였지만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최초로 세계 다큐멘터리 16편에 뽑혔다.
그리고 그 후로 많은 독립영화가 나왔다. 아직은 관객들에게 독립영화는 낯선 단어고, 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워낭소리를 통해 많은 감독들이 도전을 해보도록 지지하였고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서 영화가 자극적인 상업영화를 벗어나 소리와 화면을 통해 느낌을 전달하는 쉼표가 되었다.
이 영화의 광고문구들은 ‘소와 할아버지의 우정에 집중하여 슬픔을 느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 볼까도 생각했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쓴 글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많은 ‘워낭소리’에 대한 평론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상업적인 멘트에 현혹되지 말고 영화 그 자체를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워낭소리는 하나의 정서로 접근한 영화이다. 사라져가는 것, 잊혀져가고 있는 것,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것,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고, 고향과 부모를 연상시키면서 마음속의 무언가를 끄집어내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정서들을 어떤 소와 어떤 노인의 삶속에 끼워 넣었다. 영화는 함께 늙고 죽어가는 노인과 소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그들의 비틀거리는 발걸음과 신음소리를 들려준다.
할아버지는 연신 ‘아프다. 아파.’를 반복하고, 소는 화면에서 너무나도 힘겹게 할아버지를 태운 수레를 끌고서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부모 세대들이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힘겹게 키웠던 것을 연상시켜 부모님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한다.
또한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 윗세대들이 뒤따라온 세대로부터 밀려나고 경시되어 가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게 없는 늙은 소가 새로 들어온 젊은 소에 의해 계속 밀려나고, 여물통 한구석으로 쫓겨나고 심지어 젊은 소로 인해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는 모습이 기계를 사용한 농사법을 거부하고 ‘유기농’ 농법을 고집하는 할아버지와 그러한 농법으로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맞물려서 이런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서 추석에 찾아온 자식들이 늙은 소를 팔아버리라는 성화는 젊은 소에게 밀리는 늙은 소의 모습을 다음 장면에 보여줌으로써 ‘밀려나고 허물어져가는’ 옛 세대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