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헐 하우스에서 20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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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헐 하우스에서 20년
자서전이라서 어려울 것 같고 어떻게 써야 하나 막막한 마음으로 첫 장을 읽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 읽을 때는 지루하고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어가면서 제인 애덤스의 생애를 이해하고 되었고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이 책을 읽고 조그마한 것에 안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에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의 내용은 어렸을 때부터의 제인 애덤스의 모습과 점점 갖춰져 가는 헐 하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짧은 기간이지만 역사에서 정말 큰 업적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의 생명이 귀하고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제인 애덤스는 점차 확대되는 빈민층, 제 1차 세계대전, 경제 공황등 조국이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다 간 미국의 사회개혁가이다. 그녀는 숨을 거둘 때까지 이런 문제들을 해결 하는데 헌신 했다.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며 어린 시절 일화를 보면 링컨을 매우 존경한 인물이다. 1860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더빌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체구는 작고, 병약했으며 게다가 척추병으로 굽은 등에 안짱다리를 하고 걸었고 머리는 한쪽으로 젖혀진 모습을 한 장애인이였다. 6번의 대수술과 병으로 인한 학업 중단을 겪어야 했으며 가족 역시 어머니를 비롯하여 형제자매들도 병을 많이 겪었고 일찍 사망했다. 애덤스는 이 장애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았다. 후에 이복오빠에게 척추를 바로 세우는 수술을 받았으며 그녀는 새어머니와 새 형제들과 함께 자랐는데 계모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불편한 관계는 93세의 나이로 계모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때문인지 특히 아버지를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에서 나는 특히 아버지가 ‘퀘이커 교도’라는 부분에 주목하였다. 미국에서 그 당시 퀘이커 교도라고 하면 근본주의적인 종교적 신념 뿐 아니라 생태주의, 온유함과 존중의 만장일치제, 평화주의를 온전히 실천하는 고집스런 삶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민주, 평등의 혜택들을 쟁취하는데 비폭력 저항으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물러서지 않은 용감한 시민들이었다. 책에서 간간이 나오는 그녀와 아버지의 대화, 아버지의 교육방식이 나에게는 많은 감동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이후 제인 애덤스의 신념과 생활방식을 낳게 되었던 것 같다.
제인 애덤스는 일리노이주의 록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지만 고질병인 척추 병으로 장기 입원하게 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휴양을 겸하여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영국 런던의 토인비 홀을 방문한 것이 헐 하우스에 대한 구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영국의 사회복지기관인 토인비 홀을 보고 미국식 토인비 홀을 세우겠다는 새로운 꿈을 만들었고, 그대로 실천했다. 토인비 홀은 빈곤이 경제적인 문제로만 탓할 수 없으며 교육을 통해 빈민이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빈민운동가 토인비를 기려 런던의 동부 빈민지역에 세운 세계 최초의 지역사회복지관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돌아온 제인 애덤스는 시카고 헬스데드거리에 있는 찰스 헐이란 이의 빈집을 얻어 헐 하우스라 이름 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지역 주민들과 함께 교육, 숙식, 탁아, 체육, 문화, 친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생활과 복지의 거점으로 일구어나갔다. 북아메리카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인 헐 하우스는 그렇게 탄생하였고 애덤스는 남녀평등 사상과 평화주의를 토대로 여러 사회 운동을 펼쳐나갔다. 책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애덤스는 미국이 산업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시민들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이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구역으로 빈곤과 소외가 가져온 위생문제, 주거문제, 사회적인 불안과 갈등, 복지의 결핍과 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지역사회의 일꾼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고 스스로 돕게 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서 생기와 기쁨, 행복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나갔다. 어쩌면 미국 사회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소외된 자들, 도시 빈민들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리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비록 자신도 장애 여성이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세운 것이다. 빈민구호 활동 뿐아니라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적극 개입해 정부로 부터는 미국에서 사장 위험한 여성으로 추종자로 부터는 성녀 제인으로 불리며 미국 공동체 내 권익을 향상 시켰다.
이러한 제인 애덤스는 또한 노동단체와 다른 개혁단체들과 함께 최초의 소년심리원법과 공동주택법, 여성노동자의 1일 8시간 노동제, 공장 검열, 노동자의 보수문제 등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민자와 흑인에 대한 사법제도의 정립을 위해 힘썼고 가난과 범죄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 작업을 제안했고,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옹호했다. 1910년에 전국 사회사업가 회의에서 최초의 여성 의장이 되었고, 1915년 국제 여성회의에서 의장이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평화와 자유를 위한 여성 국제연맹을 설립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의 폭넓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으로 1931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당시 FBI는 제인 애덤스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간주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평등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 노조운동 등에는 반대의 입장을 취해서 미국 내 일부 좌파들은 그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헐 하우스는 애덤스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시카고 빈민 지역에 낡은 저택을 사들여 세운 것이며, 본격적으로 많은 의미 있는 활동들을 시작하였다. 우선, 애덤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고,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유일한 역할모델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 놓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빈민촌을 찾을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자연스레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훗날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게 될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