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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1장. 여성의 타자화된 근대경험 (p.19)
한국에서의 근대는 조선 후기 개화기 이후의 사회변화를 배경으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본격적인 근대 기획은 일제에 의한 식민지회로부터 비롯되었고 따라서 서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 과정에서 만들어 간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주체’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주체 의식을 갖게 하였다.
근대 초기의 긍정적인 면은 첫째, 산업 자본주의화와 대중 매체의 보급이 서구적 근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근대적 주체 형성의 싹을 제공해주었고, 둘째로는 소위 모던 걸, 모던 보이의 형상화에 기여하였다. 부정적 면으로는 식민화된 국가로서의 특수상황은 남성들의 주체와 일부 지식 여성들의 주체를 일차적으로 ‘민족주의’의 차원에 묶어두었고, 이러한 정치적 주체에 대한 집착은 해방 후에도 지속되어, 경제 영역의 변화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추구한 경제 계획은 한국인들을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 편입되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민족적 자아’라는 본질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발전주의/진보주의/제국주의 담론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지금의 50,60대를 한국적 근대 기획이 만들어낸 ‘무반성적 근대 주체 제 1세대’라고 하는데 근대 주체가 갖는 기본적인 조건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전 지상주의의 가장 선봉에서 계속 앞으로 내몰려 온 피해자적 근대 주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와 자율 ,주체적 결정권이 상당 부분 유보된 상태로 근대화에 포섭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러한 주체 형성의 중심에는 남성들이 위치해 있고 여성들이 그 주변부를 형성하거나 또는 아예 주체적 의식을 가질 상황에 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합리성은 거대서사라는 특징 외에 갖고 있는 주요 논리는 보편성에 대한 믿음인데 이것은 페미니즘 이론에서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는 다양성을 가로막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는 페미니즘이 표방하는 차이의 정치학이 지향하는 인간은 근대가 요구해온 표준적 인간,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한 인간과 근본적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페미니즘의 중심 주제들이 지금까지 근대 학문의 토대 속에서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거나 중심의 범주로 들어오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이나 상상력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처해있는 정보사회는 산업사회의 단계를 지나서 가상공간의 상상적 주체와 이들이 교통하는 방식에 대해 인식해야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이란 한꺼번에 몇 단계씩 뛰어오르는 논리의 비약을 보여줌으로써 영감의 차원으로 치고 올라가는 형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서구에서 진정한 의미의 근대성은 오랜 역사적 여정을 거쳐 온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이론적 숙성을 바탕으로 다져진 것이다.
2장. 젠더 관계에 투영되는 유교적 사회의식 (p.49)
한 사회의 문화는, 그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통해 각인된, 그리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환을 통해 고유의 형상을 갖는 세계관과 사고방식의 복합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며 한국인의 일상을 규제하는 한국 문화는 전근대적 사회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 인식론과 그의 결과로서의 규범, 식민지배 하에 이루어지기 시작한 자본주의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적 반목, 후발 산업화, 그리고 끝으로 서구적 소비문화가 반영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복합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유교적 사회의식이 현대 자본주의적 한국 사회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아주 미미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유교적 가부장주의는 봉건적 사회 형태에서 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산업화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고 그 안의 세계관이 점점 자본주의적이며 현대적으로 특징 지워지는 사회에서는 전자본주의적 유제라고 할 수 있는 유교적 가부장주의는 약화되고 사라져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부장주의가 생산양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그리고 하나의 전통으로서 초역사적으로 존립해왔고, 더욱이 산업화 과정에서는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재활성화, 강화된 측면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근대화/현대화의 과정에서 한국의 경우 전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는 논의가 상당부분 설득력이 없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전통의 온존화와 산업화 동안에 진행된 이의 선별적 강화의 대표적인 예는 충효사상 강조로 인한 위계적 서열 질서와 성별분리의 지속화와 차등화다. 이를 통해 여성들의 위치는 근대화 과저에서 대거 노동시장에 유입되기는 했어도 공적인 직업세계에서는 물론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의 세계에서도 국외자적 입장을 머물게 되었다. 전통적인 유교적 인간관계 질서규범을 바탕으로 하는 남녀관계에 있어서 사회적 변화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성별특화 되고 성별위계적인 분업에 있어서 유교적 직업윤리는 특별히 의미있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임금, 승진체계 등 기구화 된 노동시장 구조와 함께 통틀어 까다롭고, 쉽게 꿰뚫어 볼 수 없는, 여성들을 노동시장와 공공성으로부터 배제하는 기제로 해석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모든 사회구성원이 유교적 가부장주의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유교적 가치관의 내면화는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삶도 규정한다. 이는 지금이나 과거에나 거의 차이가 없다. 남성들 가운데도 유교적 가치관을 갖고 살기 어렵거나 또는 그 영향력 아래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뚜렷해지는 것은 남성들의 경우 이것의 삶의 태도와 연관된 ‘선택’의 차원에서 머무는 반면, 여성들의 경우에는 삶의 모든 국면과 연결되어 그 안에서 직면하는,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른다는 점이다. 즉 여성들이 가장 힘들게 그리고 가장 흔하게 배제의 구조와 제외의 기제, 그리고 억압과 내면적인 주저에 맞닥뜨린다. 이러한 스팩트럼을 따라가면서 한국 젠더 관계의 원형을 구성하는 유고의 인간관계 규범과 이 규범이 사회관계로 확대되어가면서 구성되는 질서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